삐딱하게 보기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소연 외 옮김 / 시각과언어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2003년쯤 서양미술과 관계된 학회에 참석했다가 처음 라캉이라는 이름을 접했습니다. 그곳에 계신분들이 모두 교수님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라캉에 대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정말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인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별의별사람이 다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다시 지젝이라는 이름을 접했습니다. 삐딱하게 보기에서 인용된 글이 재밌었기 때문에 이 책을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이후에도 라캉의 관련된 책들과 지젝에 관련된 책들을 몇권더 읽었습니다만 아직도 제가 라캉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지젝에 관해서도 마찮가지구요. 그런 상태로 이 책에 대해서 짤막하나마 서평을 남겨보려합니다. 저같은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하구요. 물론, 책을 건성으로 읽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떤 책보다 더 꼼꼼히 다시 읽고, 되읽고 그렇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스무살 시절이면 누구나 철학책 한권쯤은 읽어보겠지요. 그 시절에 읽었던 철학책들은 눈을 아무리 돌려도 아는 말이 나오질 않아 미끄러지듯이 술술 모르면서 넘길 수 있었습니다만, 지젝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제 눈이 글자위로 미끄러지다가도 꼭 쉬운 이야기나 영화이야기 등등 솔깃한 예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게 아마 매력인가 봅니다.

대중문화를 통해서 본 라캉 이라는 말부터가 그런 방식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겠죠. 꼼꼼히 읽는다면 분명히 이해할수없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라캉이라는 사람의 이론 자체가 어려운데다가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지젝이라는 사람이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파르마의 대정리' 인가 하는 그런 수학의 정리가 있습니다. 파르마라는 사람이 정리만 해놓고 그 증명은 너무 간단하고 쉬운데 종이가 부족하니까 생략해놨답니다. 그리고 파르마가 죽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보니까 그걸 어떻게 증명해야 될지 몰라서 수학계에서 오랜동안 큰 난제로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지젝이 글쓰는 방식도 너무 지적으로 비비 꼬여 있어서 때로는 아무리 읽어도 이게 분명히 무슨 뜻인지를 알기가 힘든 구절이 챕터마다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말이란게 쓰기에 따라 형용사나 관용절이 정확히 어디를 수식하는 것인지 불분명해질때가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부분(번역상의 미묘한 부분 혹은 그 뜻이 정확히 문법적으로 옮겨지지 않은 부분)과 앞서 말한 파르마의 경우처럼  '무슨말인지 알겠죠?' 라고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요긴한 것을 전했다는 듯이 지젝이 재밌지 않냐고 나를 향해 미소 짓는데, 나는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상황이 책속에 열 곳쯤은 있는 듯합니다. 이럴 때, 정말 역자가 밉고, 지나치게 똑똑한 지젝이 밉고, 무식한 제가 미워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점들 때문에 더 어린시절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듯이 독해하고 이해하는 재미가 쏠쏠한 책인 점은 분명합니다. 가령, 라캉에 대해 인문학적인 설명을 풀어낸 글들보다는 오히려 라캉을 쉽게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긍정을 하게되는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에 번역된 지젝의 책이나 라캉에 관한 책들중에서는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내용을 간추리진 않겠습니다. 책 읽으면 아실 이야기니까요.그런 대략적인 이해를 위해서라면 머리글만 읽어보셔도 될겁니다. 라캉이나 지젝은 지적으로 매력적인 텍스트입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특히, 미쳐버릴 것 같은 분들은 꼭 읽어보세요. 공감가는 내용이 참 많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