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모태를 찾아서 - 한국인의 삶.얼.멋
조자용 지음 / 안그라픽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 문화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아니 이 질문을 하기에 앞서서 '어떤 것이 우리 문화일까' 하는 질문을 먼저 던져보아야겠다.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집안을 둘러보며 '우리 것'이라고 할만한 것을 찾아보니 벽에 걸린 대나무 그림밖에 눈에 띄질 않는다. 기껏 하나 있다는 것이 옆에 한자 쓰인 사군자 그림이고 보면 '우리 문화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도 아니고, 잊혀진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의 지은이 조자용 선생 같은 분이 있는 한은 말이다. 이분의 이력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축가로 활동하던 선생은 어느샌가 '우리 생부모 문화는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갖게 되었다.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고, 문화재 중 부지기수가 절이고 불탑이지만 그것은 다 유교 문화와 불교 문화, 즉 '양부모문화'라는 것이다.

선생은 유교와 불교 이전의 우리 문화를 찾고자 했고, 그 해답을 '민문화(民文化)'에서 찾아냈다. 가장 한국적인 멋의 핵심은 점잖고 존경받은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지나 기생, 무당, 떠돌이 붓장수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옛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깨비, 담배먹는 호랑이, 거북이, 산신령님, 칠성님도 민문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래도 지금은 민화나 굿이 그 가치를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고, 민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기에 어쩌면 이 책의 내용 자체는 좀 식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만이 아니다. 생부모 문화를 찾기 위해 평생 도깨비 기와와 호랑이 그림들을 찾아다니고 모으고,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끊임없이 박물관을 짓고 전시회를 열었던 선생의 인생 자체가 감동을 준다. 특히 선생은 어린이들에게 호랑이, 도깨비를 친구삼게 해주고 싶어했고, '호레이 할아버지'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삶을 그의 별명처럼,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들려주듯 구수하게 풀어냈기에 읽다보면 따라 웃게도 되고, '어쩌나~' 하게도 된다.

이 책은 표지부터 번쩍거리고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차갑고 미끄러운 코팅종이가 아닌, 두터운 창호지 같은 조금은 거칠면서도 수수하고 따스한 감촉. 이 느낌이 우리 문화의 모태이고, 선생의 삶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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