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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톤즈 학교 -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우는 네 개의 메시지
구수환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3월
평점 :

섣불리 책의 첫 장을 열기를 주저하였다.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라는 글자들이 자꾸만 나를 멈칫하게 했다. 故 이태석 신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그 분 맞다. 이렇게 위대한 분의 이야기인데 왜 읽기를 주저하였나. 가방에 항상 담겨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
뭐랄까, 암 투병 중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겹치며 혹시나 어느 대목을 읽고 아무 데서나 눈물을 질질 짤까 봐. 혹은 그를 통해 초라한 내 모습을 반추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아무래도 후자 쪽에 더 강하게 무게가 실린다.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KBS의 오랜 탐사보도 PD로서 <추적60분>, <일요스페셜> 등 날카롭고 신랄한 현장을 취재하며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진실을 보여주려 했던 구수환 피디가 엮었다. 그는 우연히 이태석 신부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구 피디는 불교 신자였지만, 이태석 신부의 고귀한 생에 감복 받아 생전에 보지도 못한 이 신부의 불꽃 같은 인생을 샅샅이 취재하고, 글을 쓰고, 영화 <울지마 톤즈>까지 제작하였다. 인종과 국경, 종교를 초월한 휴머니즘과 사랑을 몸소 실천한 이태석 신부의 경이로운 삶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0남매 중 9째로 태어난 이태석 신부는 9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와중에 공부와 음악 재주가 출중하여 스스로 의대에 진학하고, 성가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건실히 성장했다. 어려서 형과 같이 봤던 한센병을 치료하는 다미안 신부와 관련된 영화를 보고 그와 같이 섬김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없는 집안의 자식이 의사가 된다니 홀어머니는 그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듯 영광스러워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렇게 귀한 아들은 저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사제가 된다하였다. 노모는 억장이 무너지고 수많은 날들을 눈물로 흘려보냈다.
전쟁과 가난으로 생명과 목숨이 위태로운 수단에 홀로 날아가 그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것을 비롯해, 학교는 물론 병원 등의 시설을 세웠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의사로, 교사로, 농사꾼으로, 건축업자로, 친구로, 아버지로 지냈다. 정녕 그는 인간인가? 아무리 사람이 능력과 재주가 많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일들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크고 작은 후원들이 있었을지라도 그의 행동은 인간을 넘어선, 세상을 창조하는 정녕 신의 것들이었다.
이 신부는 아무리 병에 걸리고,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대함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이, 성별, 국적, 종교, 재산, 권력 등의 세상의 것들은 하나도 걸릴 것이 안 되었다. 그들과 진심으로 교류하기 위해 현지어까지 독학하고, 열성이었다. 그들에게 건강을 주고, 웃음을 주고, 교육을 통해 희망을 주던 이 신부는 정작 자신의 몸속에 암이 퍼진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삶을 잃어갔다.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니, 그는 건강할 때나 투병할 때나 표정이 한결같았다. 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는 왜 흐트러짐이 없는 건지.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뜰 때까지도 수단 사람들을 생각하며 떠났다. 수단에 있던 제자를 한국에서 공부까지 시키는 끈을 지키면서 말이다.
세상이 시끄럽고, 진정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분위기의 사회일수록 '섬김의 리더십(서번트 리더쉽 Servant leadeship)'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존중하며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리더십 말이다. 화려하고 의미 없게 사라지는 말 없이 그저 가장 옳은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감복 받은 이들이 자연히 따르며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개인주의를 넘어선 집단적 이기주의, 각종 카르텔, 이념 주의 등 날카롭고 예민한 세상 속에서 이런 분의 생애는 너무도 귀하다. 우리는 언젠가 만나니까, 어느 곳에 어느 모습으로 만나더라도 신부님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조용히 두 손을 모아본다.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