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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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 그래, 개기일식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주인공과 100년 전 살았던 인물이, 그렇게 개기일식처럼 포개졌다.

책장을 열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린 이 작품은, 작가 브래디 미카코가 전에 출간했던 자전적 에세이들과 비슷한 주제 의식을 담았지만, 소설이라는 형태로 몰입감을 더했다.

화려한 수사나 극적인 표현을 자제한 담담한 문체로 다음 장을 넘겨보지 않고서는 책을 놓지 못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하였다. 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영국 소녀 '미아'를 중심으로 쓰인 이야기에 그녀의 전신과 같은, 아니 전생에 미아 그 자체였을지도 모를 일본인 '후미코'의 이야기를 액자식으로 구성하여 서스펜스를 더한 것이 기폭제 역할을 제대로 한 셈이다.

한부모 가족, 가난, 가부장제, 약물중독, 알코올중독, 학교폭력, 차별, 왕따 등 온갖 혐오스러운 상황 속에 던져진 아이들이 살아갈 유일한 방법은 철저히 타인을 경계하고, 함부로 타인에게 마음을 주거나, 희망을 품지 않는 것. 이 과정이 너무도 처절해서, 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이 덜컹 바닥으로 푹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무고한 그들은 부모를, 사회를, 국가를, 그 어떤 것도 선택할 권리조도 없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부름에 이 땅에 발 디디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겪어서는 안 될 일들을 무자비하게 당할 뿐이다.


나는 글을 보며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 2020>이 떠올랐는데, 이 작품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 즉 의식주를 비롯한 성욕 등 1차원적인 욕망이 이성을 잡아먹을 때,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추악해지는지, 결국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쓴 악마로 변해가는지 그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공간을 통하여 사회구조와 계급을 상징하는 장치는 봉준호 감독이 자주 쓰는 기법이기도 한데, 영화가 '헉' 소리 나올 정도로 매우 잔인하여 쉬이 추천은 하지 못한다.

저렇게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고? 하며 그 처절한 생존본능을 눈앞에서 직면하기가 매우 불편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사람이므로 끝까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저항할 방법은 '양손에 토카레프'를 드는 것.

토카레프는 권총이다. 물론 상징적인 표현이다. 부조리한 이 사회에 대한 저항이며, 불복종이며, 자유 의지의 표현이며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다른 너와 내가 공생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공명 共鳴".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기', 이는 타인의 무게를 자신의 무결한 의지로 경험하겠다는 '공감(empathy)'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후미코와 미아가 푸른 하늘을 보며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도록 성숙한 인간성 되찾기에 힘을 실었으면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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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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