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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마지막 장을 덮고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읽는 내내 불편했다.
도대체 이것이 사실인가? 소설이라니 픽션이겠지, 설마… 픽션일 거야.
『위민 토킹』. 제목만 봐서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겪는 출산, 육아, 유리천장, 꿈 등의 이야기로 자아실현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충을 이야기하는가 싶었다.
책 표지가 모던하다. 색감도 세련되었다. 그래서 내 직관은 더욱 완·벽. 하·게 틀렸다(완독 후 꼼꼼히 보니 표정없는, 비슷한 옷을 입은, 머리에는 스카프를 두른 여인들이 마네킹처럼 모여있다).
혹시 볼리비아의 '메노파 공동체'에 대해 들어봤는가? 금시초문이라면, 이 소설의 주요 소재인 메노파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메노파란 네덜란드 '제세례파'의 지도자 '메노 시먼스'의 흐름을 계승한 그리스도교의 한 파를 일컫는다.
여기서 '제세례파'란 종교개혁과 함께 출현한 다양한 급진파 중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성인 세례를 행한 교파를 말한다. 메노는 가톨릭 신자였으나 '신약성서'가 암시하는 철저한 평화주의를 제창하여 많은 신봉자를 얻었다.
현재 볼리비아에 정착한 약 6만 명에 이르는 메노파들은 작은 마을에서 농업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데 독특하게도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담을 쌓고 17세기에 머무른 생활을 하고 있다 한다.
17세기? 지금 21세기다. 왜 그들은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걸까?
이들은 신의 뜻을 받들기 위해 자진해서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산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에게 형벌을 받는다고 뼛속 깊이 새겼다. 누구로부터? 교파를 계승하고 장악하는 절대권력의 주교와 원로회 사람들로부터.
자유의지란 전혀 없는 공동체 사람들은 모두 '신의 섭리'와 '교리'에 따라 일관되고 정해진 삶을 살아간다.
세상과 단절된 채, 그 어떠한 문명도 누리지 못한 채.
그나마 남자들은 언어를 배우고, 일정 교육을 받으며 일을 하지만, 여자들은 언어조차 배우지 못한다.
말은 하지만 읽거나 쓰지를 못한다. 문맹은 인간의 주권을 포기한,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를 타인에게 쉽게 점령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다. 마을의 여인들은 공동체가 돌아가도록 온갖 집안일, 가축을 키우는 일 등 보조적이고 소모적인 역할만 할 뿐이다.
오래도록 억압된 자유는 힘 있는 남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부정행위로 표출되었다.
알코올 중독, 쉴 새 없는 주먹질, 집단 싸움, 정신적 테러 등. 급기야 마을의 남자들(가족, 지인, 어른, 아이 할 것없이)이 떠돌아다니며 100명이 넘는 여자들(역시 가족, 지인, 어른, 아이 할 것없이)에게 무자비한 강간 및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이들은 동물에게 사용하는 마취제로 여성들을 기절시킨 다음 닥치는 대로 폭력을 행사했다.
여성들은 상처 난 몸, 출혈, 심한 고통 속에서 겨우 깨어났다. 어떤 이는 고령자였고, 어떤 이는 아비가 누군지도 모를 임신을 하였으며, 그 잔인한 현장 속에 3살 여자아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유령과 악마의 짓이다, 여자들이 지은 죄로 신이 내린 벌이다, 간통을 숨기기 위해 한 짓이다, 여자들의 터무니 없는 상상이다'라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였지만, 결국 이 모든 사건은 마을의 남자들에 의해 행해진 것이 밝혀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이 사건을 토대로 이 글이 쓰인 것이다.
대체 믿을 수가 없어 검색을 해보니, 정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서두에 작가가 밝혔듯이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볼리비아의 외딴 메노파 공동체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떡 하니 있다. 그러나 관련 기사량이 많지는 않다. 이 작품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도 있다. 다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거나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사실에 따라 쓰였고, 한때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작가 '미리엄 테이브스'가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상상력을 더해 쓴 소설이다.
서두에 사건의 개요와 글을 쓴 목적이 요약되어 있는데, 이것이 스토리의 전부라고 할 수있다.
이후 내용은 마을 여성들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낸 목소리를 조명한다.
이틀에 걸친 열린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을 기록할 사람이 필요한데, 글을 쓰지 못하는 여성들을 대신해 아우구스트 에프라는 남성이 대신 회의록을 작성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회의록 형태이기에 그를 통해 보이고 들리는 대로-때로는 그의 의견을 섞어서-서술하고 있다.
어떠한 주요 맥락이나 슬롯이 없다. 그저 그녀들이 한 말, 행동을 하나하나 받아적는 형식이다.
회의를 연 그녀들은 고민한다, 이 사건의 해결책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할 것인가, 남아서 싸울 것인가, 떠날 것인가'에 대한 답지를 놓고 각자의 주장과 의견을 내놓는다.
'신은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교리를 어기면 지옥으로 가는 형벌을 받을 것이 아닌가?'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부터 '우리는 아이들이 이들처럼 성장하게 할 수 없다, 아이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등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대어 의견들을 내놓는다. 그녀들에게는 단지 배움이 없었을 뿐이지, 사고를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민주적인 토론으로 합일점을 끌어내었다. 결코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존재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녀들이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은 신의 섭리와 모성, 그리고 사랑이었다. 때로는 무식할 정도로 타인을 생각하는 그녀들에게 분개할 정도였으니까.
이야기의 끝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마무리하도록 힘을 실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평생 그러한 관념체계 아래 살아온 그녀들을 우리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이것이 또 다른 폭력은 아닌지, 그렇지만 21세기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뿌리 깊게 내려앉은 그 가치관 때문에 그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따져 물어 구제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것은 비단 페미니즘 소설이라 국한 시킬 것이 아니다. 인간의 권리, 존엄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다만 성(性)에 기초한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모두가 나은 삶을 사는 방식에 관해 힘주어 이야기 할 뿐이다.
Reference
* 종교학 대사전
* [슈테른 보도] ‘17세기에 멈춘 마을’ 볼리비아 메노파 공동체의 비밀 | 일요신문 (ilyo.co.kr)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