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뱀이 잠든 섬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2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흰 뱀이 잠든 섬

 

 흰 뱀이 잠들어 있는 섬이라니, 모험의 냄새가 물씬 나지 않나요? 일본의 외딴 섬 오가미에서는 13년만에 대축제가 벌어져요. 대축제는 신사의 차기 주인이 대를 이어받고, 섬에 흐르는 기운을 안정시키는 의식이죠. 흰 뱀이 잠든 섬은 이러한 대축제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환상적이고 기묘한 일들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소년들의 우정에 대해 그리고 있어요. 대축제를 앞두고 섬에 '그것'이 나타났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요. '그것'은 바다와 산을 드나든다는 전설 속의 괴물. 금빛 눈을 가진 이 괴물은, 눈을 마주친 사람의 눈 속으로 들어가 몸속을 먹어치운다고 전해져요. 이름없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회피하며 '그것'이라고 대리칭해지는 이 괴물은, 우리에게 친숙한 한 판타지 소설을 생각나게 하죠. 해리포터 시리즈 말이에요. 해리포터의 최대 적인 볼드모트경 역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로 일컫어지곤 했죠. 볼드모트도 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치에요.

 

 그러나 오가미 섬의 괴물은 뱀은 아니에요. 오히려 뱀은 마을의 신으로, 오가미의 신사에서는 백사 또는 황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모시고 있죠. 영물과, 그것을 모셔둔 신사라는 것은 상당히 일본적인 색채를 느끼게 해요.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것은 비단 일본의 색채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도 신령이라하여 명산이나 영물을 모시는 사당을 두곤 했었죠. 우리나라도 남해의 수많은 섬중 어떤 곳에서는 아직까지 그러한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들도 마찬가지죠. 오가미섬은 이러한 신의 기운이 단순한 믿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보여지는 곳이에요. 비록 선택받은 몇사람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요. 대축제의 비극은 그 선택받은 자가 신사를 모시는 신구가의 장남이 아닌 차남이라는데서 시작되어요. 신력이 없는 장남 신이치와, 선택받은 자의 비늘을 지니고 태어난 차남 아라타. 이들 두 형제간의 갈등은 장남은 남고, 차남은 떠나야 하며, 외부인의 이주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폐쇄적인 섬의 전통과 결부되어, 이를 지키고 싶어하는 무리와, 바꾸고 싶어하는 무리의 간의 갈등으로 확산되어요.

 

 해리포터가 볼드모트경을 물리친 것이 론과 헤르미온느라는 친구들과의 우정에서 가능했듯, 오가미 섬도 두친구의 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게 돼요. 사토시와 고이치, 둘은 지념 형제죠. 오가미 섬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장남을 지념 형제로 엮어주는 풍습이 있어요. 가질 지(持)에 생각 념(念). 생각 념 자를 풀어 보면, 이제 금(今)과 마음 심(心)으로 나눌 수 있죠. 결국 지념이란 지금, 마음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사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사토시가 섬 외부에 있는 고등학교를 가는 바람에 서로 오래 만나지 못했어도, 둘은 만나면 매일 보았던 사이처럼 친밀함을 느껴요. 하지만, 언뜻 사토시와 고이치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아 보여요. 사토시는 섬에 오면 자꾸만 이상한 것들이 보여요. 게다가 배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죠. 섬은 그에게 이질적인 공간이에요. 반면 고이치는 어린나이부터 어른들과 고기잡이를 나가고, 섬에 편안함을 느끼는, 전형적인 섬의 사람이죠. 사토시가 보는 이상한 것들도 그에겐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둘의 다른 모습은 오히려 긍정적인 시너지 작용을 하여 마을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죠. 사토시의 신력은 섬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길을 안내해요. 고이치는 이런 사토시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함을 주고,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해주며 용기를 주죠. 평생 한명이라도 이러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 일거에요. 이런 친구가 있으신가요? 저는 딱 한명, 너, 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몇몇 친구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가네요. 오빠는 어떻냐구요? 우정이랑 사랑은 다른거잖아요^^

 

 섬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되자, 사람들은 하나 둘 일상으로 돌아가죠. 신력이 있는 아라타와, 섬의 장남인 사토시는, 어쩌면 섬에 남아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섬에서 벗어나 자신을 길을 찾아가게 돼요. 뱀이라고 하면 사실 썩 좋은 느낌을 주진 않는게 사실이에요. 팔다리도 없이 미끄덩하게 생긴데다, 비늘로 덮여 있는 이 생물의 생김새는, 사람과 닮은 면이 너무 없어서인지 호감을 갖기 어렵죠. 하지만 오가미 섬의 백사는 오히려 황신과 함께 '그것'의 검은 기운으로부터 섬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어요. 이러한 점을 상기하며 우리도 뱀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보면 어떨까요? 아라타와 사토시가 섬의 관념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듯, 우리도 관념에 얽메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인습을 벗어나 섬 밖으로 나온 그들의 선택은, 앞으로 그들 자신은 물론, 오가미 섬을 발전시켜주는 계기가 될거라고 믿어요. 우리도 혹시 또 모르죠. 뱀을 긍정적인 영물로 대하다보면, 올 한해 뱀의 가호가 우리와 함께할지.

 

 계사년 뱀띠 해도 어느덧 한달이 되어가요. 어떻게, 잘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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