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부끄럽게도 난 책 읽기를 꽤 즐기는 편이지만 정작 서점에서 내 돈을 내고 책을 사본 적은 별로 없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다. 서점에 가보면 읽고 싶은 책이야 하도 많지만 그걸 다 사다보면 버스비조차 모자라게되는 슬픈 현실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가장 해보고싶은 일이 책 뒷표지의 가격에 연연해 하지않고 내가 보고싶은걸 척척 집어서 계산대로 직행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말 마음에 들어서 두고두고 보고싶은 책만 구입하자는 신념아닌 신념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자연히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곳도 시립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이다.

 아, 이런 말을 문두에 썼다고 해서 이 책은 내가 소장하게 된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도 학교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소장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요 근래 읽은 책 중에서 소장하고 싶은걸로 치자면 단연 이 책이야말로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화르륵 불타오르지않아도 좋으니 책장을 덮고나서도 계속 마음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생각하게 만들고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읽은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질 정도로 여운이 강한 작품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고작 80분동안 지속되는 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원했다. 박사에게도, 루트에게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이미지화되어 저장되었다. 햇빛이 아스라히 비치는 따뜻하고 안락한, 그러나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공간.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항상 활자화된 소설의 내용이 아닌 이 이미지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러면 뭐라해야하나,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지는 거 같고 괜시리 뭉클하다. 소설이 종이위에 인쇄된 활자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않고 독자가 읽고 그것을 3차원의 세계로 끄집어내 느낌으로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면 나에게는 이제껏 경험한 책 중 가장 소름끼치는 감동으로 그것이 이루어진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긴 무척 어렵지만 이 책을 읽고 감동받은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이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믿는다.

 나는 문학이 갖추어야할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물론 혹자는 피상적이고 천박하다고 하겠지만- '재미'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뛰어난 문제제기와 성숙한 의식을 가졌더라도 '재미'있지 않으면 즐거움을 느낄 수 없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읽는 사람은 활자를 여전히 2차원의 세계에 두고 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떨리는 감동과 함께 활자를 3차원으로 끄집어내는 재미와 읽어나가는 즐거움으로 독서를 즐겨왔지만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이렇도록 가슴이 멍해지는 여운을 글에 담을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샘이나도록 부러워졌다.

 정말 사랑하게 된, 사랑하고 있는 책이다. 한달 전쯤 이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있음에도 일본인디영화제에 갔다왔다. 그리고 영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 영원한 찰나. 너무 오바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코드에 딱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눈물나도록 아름답다. 오히려 그렇기에 소장하기가 두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