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4월이지만 2010년 상반기 최고의 책이 될 듯한 예감.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그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진 못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의 대표작임과 동시에 평론가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은 작품이지만, 나에겐 벅찬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그 운동권 시대 자체가 너무너무너무 재미가 없다. ㅠ  

<사랑이라니, 선영아> <7번국도> 등도 나에게 큰 감명을 주진 못했다.  

내가 그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나서였다. 

산문, 에세이에는 작가의 본디 말투라든지 배어나오는 평소 성격등이 배어나오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책에서는 김연수 작가의 유머스러움이라든가 그가 항상 짓고 있는 웃음처럼 세상을 관조하면서도 따스하게 받아들이는 관점 등이 상당히 맘에 들었다. 글이 재미있었던건 당연하고! 

그러던 중 김연수가 나온다는 소식에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보았고, 그의 코믹한 캐릭터에 반가워하며 미소지으며 봤다. 

그러다 늦게서야 접한 신작 <세계의 끝 여자친구> 

결론부터 말해서 이제껏 본 김연수 작가의 소설 중에서 가장 맘에 든다.  

한국소설은 쓸데없이 진지하고 형이상학적이며 어둡고 재미없는 것 투성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도 자신있게 재미있는 '한국' 소설이 여기 있어! 하고 추천해줄 수 있는 그런 책. 

단편 하나하나가 특색이 있고, 그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다. 재미있고 공감가는 요소가 많으면서도 최근 또는 몇십년전의 사회적 문제들을 배경으로 사용한 것도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했다. 사실 용산 철거민 사건을 소재로 쓴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를 읽고 책을 보던 버스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 직업상 용산 사건과 관련해서 일을 했었는데, 맞서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제지하고 보호해야할 입장이었다. 가까이서 자주 보기도 하고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로 매일같이 대하다보니 그 사건의 심각성과는 무관하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내가 단순히 객관적으로만 대했던 그 대상들에게도 이렇게 속끓는 사연이 있다는걸, 그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미안하고 또 작가에게 고맙고.  

단편 하나하나가 소장가치 있고 매력적인,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