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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어
안 소피 브라슴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1984년생인 브라슴은 열일곱 살 되던 해에 이 작품을 프랑스에서 발표했다. <숨쉬어>는 출간된지 사흘만에 5,000부가 팔려나갔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달 30일에 출간됐다. 브라슴은 자신의 첫작품의 서두를 이런 문장들로 시작한다. 

 

“내 이름은 샤를렌 보에다. 나는 열여덟 살이다. 똑같은 나날들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을 지켜보며 이곳에 죽치고 있은지도 벌써 이년이 되었다. 유년기를 갓 빠져나오자마자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경멸하고 내게 증오의 시선을 보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샤를렌은 친구(사라)를 죽인다. 베개로 얼굴을 눌러 질식사시킨다. “숨쉬어!”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살인의 시각으로부터 몇 년 전 자살을 기도한 샤를렌이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바로 그 말이기도 하다)…. 잠시 후 샤를렌의 친구는 죽는다.

 

샤를렌이 친구를 죽인 이유가 뭐냐고?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 친구 살아 생전에는 그 친구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범행 후 살인자 샤를렌은 후회는커녕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작품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고통과 혐오와 수치심을 느끼기는 하지만 내가 그 증오스러웠던 삶으로부터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 빠져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막심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내 사춘기를 회상해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 그리고 나를 비춰보는 거울로서의 타인을 보며 내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던가를 기억해냈다. 샤를렌처럼, 내 사춘기 또한 급격한 정체성(identity)의 혼란으로 뒤흔들리던 시기였다. 내가 누구인지 모호했고, 나와 구별되는 남을 어떻게 다룰지 방침이 서지 않았었다.

 

<숨쉬어>의 샤를렌은 자기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거울로서) 사라를 필요로 했다. 자기자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런 방식으로 타인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샤를렌은 사라에게서 독립해야 했다. 성공적으로 독립했어야 했다. 사라를 해치우는 방식으로가 아닌 다른 방식(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로 나아가는 길)으로 말이다.

 

그러나 샤를렌은 다른 방식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샤를렌은 자기 안에 있는 또 다른 샤를렌에게 말한다. 내가 내 인생을 살도록 좀 내버려둘 수 없어? 그때 샤를렌이 샤를렌에게 대답한다. 사라보다 네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이 확인되면 사라져주겠어.

 

이 작품, 아프다. 그러나 의미있다. 샤를렌처럼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서, 지금 이 순간 (자기정체를 고민하며 사춘기를 겪고 있을) 수많은 다른 샤를렌들이 단지 평안하고 무감각하게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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