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미하엘 유르크스 지음, 김수은 옮김 / 예지(Wisdom)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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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을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 그러나 교과서에는 '크리스마스 휴전'에 대한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하엘 유르크스는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의 멈춘 작은 평화>로 '크리스마스 휴전'을 조목조목, 사료(史料)를 들어가며 증언한다. 그때, 전쟁하다 말고 평화를 추구한 병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 예지
전쟁은 130만 명 프랑스군의 목숨을 앗아갔다. 자크 타르디가 자신의 카툰모음집 <참호전>에서 계산한 바에 따르면 모든 프랑스군 전사자들이 4열로 행진한다면 마지막 사람의 얼굴을 볼 때까지 5박 6일 이상이 걸릴 정도의 숫자였다.(294-296쪽)

각 나라 전사자들을 통틀어 최소한 900만 명 이상이 죽은 이 재앙 속에서 서부전선의 병사들은 '짧게나마(두세 시간 혹은 1년간)' 평화를 창조했다. 1914년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각국의 병사들은 각기 제 나라 말로 크리스마스 노래를 합창했고 참호에서 무인지대로 걸어나와 선물을 주고받았으며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었고 즐겁게 축구경기를 했다. 그리고는…, 결국 긴 전쟁기간을 감내하지 못하고 대다수가 죽었다.

유르크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각국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선동되어 전선으로 나갔음을 지적한다. 물론 전쟁의 초기, 너도나도 애국심을 자부했다. 대개가 전쟁을 찬성하였다. 모든 서구의 지성인들도 참전을 독려했고 자국의 승리를 배타적으로 확신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전쟁을 "대중은 선전에 중독되지 않는 한 결코 전쟁을 열망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유르크스는 서부전선의 병사들이 크리스마스를 기해 평화를 일구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병사들의 전쟁이 아니었고, 병사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8월(전쟁발발시점)의 열광은 오래 전에 죽어버렸다. 그 환상은 진창 속에서 질식했다. 그들은 서로 부르고 볼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살고 죽었다. 이런 가까움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병사들은 1914년 크리스마스에, 자신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한 사람들 중에는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이 드물다는, 그리고 그런 명령에 따라 총을 쏘아야 했던 사람들은 무기 앞에서는 근본적으로 다 같은 불쌍한 돼지에 불과하다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똑같다는 놀라운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209쪽)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탄생한 날이다. 유럽인들 대다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병사들은 바로 그날 서로 하나가 되어 기적을 만들어냈다. 서로 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고, 상부의 명령으로 불가피하게 총을 사용해야 할 경우 엉뚱한 곳을 향하여 발사하기로…. 그들의 평화는 전염성이 강했으나, 그들 상관들의 방해로 인하여 마침내 저지되고 말았다.

1914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군사적 지시들은 모든 사령부의 공통된 외침이었다. 평화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 최고의 군부는 모두 똑같았다. …(중략)…. 어떤 대가(복무위반행위 처벌, 관련 아군장교 사형구형 등)를 치르고서라도 1914년의 ‘방종’이 재현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323-324쪽)

그리하여 1914년에 시작된 전쟁은, 그것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 상관들 때문에 1918년에 가서야 끝이 났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전쟁, 또 전쟁…. 20세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이제 이 책에 실린 평화의 이야기는 계속 힘있게 증언되어야 하겠다. 1914년과 1918년 사이에 유럽사람들이 모조리 다 전쟁에만 매달려있었던 게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기억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 발발할지 모를 전쟁에 참가하게 될지라도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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