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입은 예수(Jesus in Blue Jeans) - 로리 베스 존스

 

 나는 가톨릭 신자이신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따라 주말에 성당을 나갔고, 딱히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성당에서 말하는 냉담자이다. 나는 매 주마다 성당을 나가지 않고, 성서도 끝까지 읽어본 적 없다. 가장 중요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로 주일학교 교사 활동을 했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학생들 앞에서 예수에 대해 가르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일이지만 이 책을 통해 세계 각국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예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청바지를 입은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울린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었다. 흰 로브(robe)를 입은 예수보다 청바지를 입은 예수의 모습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예수란 이름을 들으면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환한 웃음을 띠는 모습을 그렸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다가가기 힘든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런 나에게 예수의 모습을 친근하게 그리는 것 같은 제목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책 제목이 이렇게 지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작가가 꿈을 꾸었는데, 예수가 청바지를 입고 나온 것이다. 그녀의 꿈속에서 예수는 2천 년 전에 로브를 입고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은 그들이 그것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고, 지금은 그녀가 청바지를 입고 있으니 청바지를 입고 그녀에게 왔다고 하였다. 그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예수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네 가지로 추려냈다. 바로 평정, 비전, 열정, 그리고 능력인데, 각기 주제마다 소제목을 붙여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나는 전반적으로 이 책을 통해 멀게 느껴졌던 예수라는 사람이 나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서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그렇지 못해 객관적으로 글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글에서 제시된 성서 구절의 상황이 모두 이해될 만큼 자세하지는 않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예수님은 진실하셨다(He Was Authentic)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평범한 키와 체격을 지닌 예수를 돋보이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진실함이다. 잔칫집에서나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서나 늘 한결같았다. 누구와 함께 있든 어디에 있든 변함이 없었다. 예수의 기적 못지않게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은 진실한 그의 인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언제 나의 진실한 자아를 드러냈을까? 나는 얼마만큼 진실한 사람인가 내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나는 나의 진실한 자아를 깨닫지 못했다. 나에게 묻기 전에 주변 소리에 나를 판단해버린다. 나는 독보적인 존재인데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참된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나의 모습들이 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매우 무서웠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내가 입은 그 옷을 정말 좋아하는가, 아니면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입은 건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진실함을 모른 채, 다른 사람의 진실함을 무리하게 찾으려고 했었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의 진실함을 찾기 이전에 나의 진실함부터 찾아야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생애 단 한번 - 장영희

     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Thy peace;
     where there is hatred, let me sow love;
     when there is injury, pardon;
     where there is doubt, faith;
     where there is despair, hope;
     where there is darkness, light;
     and where there is sadness, joy.
     O Divine Master,
     grant that I may not so much seek to be consoled as to console;
     to be understood, as to understand;
     to be loved, as to love;
     for it is in giving that we receice,
     it is in pardoning that we are pardoned,
     and it is in dying that we are born to Eternal Life.
     Amen. 

 기도문 외우는 걸 무지 게을리하는 나. 그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인 '평화의 기도'. 웹서핑하다 영어원문이 있길래 얼른 타이핑해두었다. 복사가 안되더라고. 쩝; 얼마 전에 읽은 '내 생애 단 한번'이라는 수필집에 장영희 교수님께서 이 기도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옮기셨더라.
 얼마 전에 읽은 것도 잘 기억 못하는 머리지만, 많은 공감을 하며 읽었던 게 생각나네. 무언가를 바라기보다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그런 삶.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 이웃에게 따뜻함을 나눠주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부쩍 늘어나는데, 종교적인 걸 떠나 우리 삶에 따뜻함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