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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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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까미노를 다녀온 사람이 주변에 많아졌다. 다녀온 사람마다 한목소리로 꼭 한 번 걸어보라고 성화다. 난 걷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정말 까미노가 날 부르고 있는 걸까?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는지라 신간코너에서 집어든 사진 에세이에 까미노 사진이 한가득이다. 까미노뿐만이 아니다. 규슈 올레, 제주 올레, 아프리카, 히말라야, 몽블랑 등지를 '걸으며' 찍은 사진들도 감탄을 절로 일으키며 눈을 즐겁게 한다. 표지에 박힌 '길 위의 사진가'라는 작가의 멋진 별칭이 전혀 아깝지가 않은 책이다. 걸으면서도 사진을 '잘' 찍는 실질적인 조언을 빠트리지 않은 영민함과 쓸데없는 멋부림 없이 진솔하게 담아낸 작가의 잔잔한 목소리도 참 좋고. 

오랫동안 언론계에서 헌신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 위로 나섰을 때에야, 자신의 뷰파인더에 담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는 첫 장의 진술부터 마음을 뭉클하게 하더니,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미소, 땀에 젖은 신발, 바람, 작은 돌멩이의 온기까지 오롯이 담아낸 듯한 사진과 글들로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하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걷고 싶어 미칠 지경으로 만든다. 작가가 바란 대로 '사람 냄새'로 가득한 책이다.

걷는다는 것은 이토록 멋진 일이군요. 걸어야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이 이토록 많군요. 

옆에 가까이 두고 오래오래 보아도 좋을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언젠가 당신 또한 길 위로 나서게 하리라. 변화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은 채.

  


길을 걷는 속도에 따라서도 보이는 게 달라진다. 빨리 걷는 사람은 느리게 걷는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천천히 천천히 걸으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속도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사진을 찍는 새로운 시선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p. 25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을 작은 것들이 크게 다가오는 곳이 카미노다. 자판기 커피의 양이 생각보다 많을 때, 늦게 널어둔 빨래가 금방 말랐을 때, 기다리지 않고 바로 샤워할 수 있을 때, 갈증이 난 순간 누군가 오렌지 한쪽을 떼어줄 때. -p. 66 <행복의 크기는 다양하다> 중에서. (여기 실린 사진도 참 좋네요.)

밖에 먼저 나와 있던 한 순례자가 내게 카미노가 어땠는지 물었다. 몇 가지 단어만 떠오를 뿐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중략) 그러나 적어도 배운 것은 있다. '길은 반드시 평등하지만은 않다. 자연은 절대 내 의지대로 움지기 않는다. 사람은 길 위에서 절대 멈추지 않는다'라는 것을.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니 질문을 던진 순례자가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좋았어." -p.165 <별이 떠 있는 들판에서> 중에서

내가 보는 시선의 높이에 따라 세상은 변화한다. 그러니 항상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자. 그렇게 사진을 찍어보자. -p.202 <세상을 찍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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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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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말랑말랑한 감성을 주재료로 채워넣은 흔해빠진 기획물이 아니라는 것. 프로작가의 사진 에세이답게 페이지마다 실린 사진들이 수준급이거니와 멋부리지 않은 글도 담백하고 맛나다. 오랜만에 마음이 담긴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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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 조선어학회, 47년간의 말모이 투쟁기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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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가슴이 벅찼어요. 와... 우리 한글 정말 대단하네요. 세종대왕님만 위대했던 게 아니었어요. 오늘날 우리가 숨쉬듯 한글을 쓰고 사용하는 것은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 덕분이었군요. 소설처럼 씌어져서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두고두고 물려주고 싶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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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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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재밌다. 완벽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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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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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다자이의 오사무의 <사양> <만년> <인간실격> 중에서
이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이 가장 좋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나는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졌으며,
그를 어떤 의미에선 연모하게까지 된 것이다.

<인간실격>은 서문부터가 무척 흥미롭다(그렇다, 좋은 작품은 첫 인상에서부터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한 남자의 유년과 청년시절, 그리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러나 그의 삶이 종말에 이르렀음을 확신시키는 모습을 담은 세 장의 사진에 대한 감상평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진의 관찰자는 세 장의 사진 모두에, '딱히 무엇 때문이랄 수도 없이 보는 사람을 섬뜩하고 역겹게 한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그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남자의 수기가 뒤이어 펼쳐진다. 부끄럼 많은 생애,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생애가.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이웃 사람들은)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중략)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16~17쪽]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전혀 자신할 수 없었던 사람 요조. 그러나,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요조는 '익살'을 무기로 삼기로 작정한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하자, 그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고 작정한다. 그렇게 해야 인간과의 가느다란 끈이나마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도회지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그리고 술과 담배, 그리고 창녀와 같은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요조는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거기에는 '호리키'라는 대학생이 큰 일조를 했다. 우연히 만난 '도회지 건달' 호리키는 돈을 쓸 줄도 몰랐던 요조를 끌고 다니며 그의 지갑을 비우는 일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냈으니까. 이제 더이상 집안 식구들을 속일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떨어지고, 난생 처음 극심한 궁핍함을 겪게 된 요조는, 어느날 밤 첫 자살을 시도한다.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완전히 지쳐버린 한 유부녀와 함께였다. 하지만 그는 살아나고, 여자는 죽는다. 그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의 일이었다. 

집안의 외면과 학교로부터의 퇴학. 그를 지탱시키던 사회적 위치가 모두 박탈된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파멸해간다. 타산과 체면과 허위와 기만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부터 따귀를 맞고 짓밟히고 포박 당하여, 어두침침한 골방 속에 처박힌다. 인간을 두려워했던 그의 본능은 그야말로 진실된 것이었다. 요조의 돈을 물쓰듯 써댔던 호리키는 이제 별볼 일 없어진 요조를 타박한다. 그럼에도 요조는 자신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호리키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처절함을 느낀다. 그는 더더욱 술에 빠져든다. 가진 것을 모두 털어서 술을 사 마시고,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신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이다.  

도쿄에 큰 눈이 내린 밤이었습니다. 저는 취한 채 긴자 뒷골목을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라고 작은 목소리로 되풀이해 중얼거리듯이 노래하면서 내리는 눈을 구둣발로 차며 걷다가 갑자기 토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최초의 각혈이었습니다. 눈 위에 커다란 일장기가 그려졌습니다. 저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더럽혀지지 않은 눈을 양손으로 쓸어 담아 얼굴을 씻으면서 울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야?    [123쪽]  

완전한 폐인.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수재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그는 단 한 번도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폐인이 된다. 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당한 패배자. 정신병원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고, 집안이 원하는 대로 시골에서 쓸쓸히 요양생활(말썽 피우지 않는 생활)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 그는 행복도 불행도 없이, 간혹 늙은 식모로부터 겁탈을 당하면서, 가끔 그녀와 부부 싸움 같은 것도 하면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134쪽]

체념, 결국 그것이 그를 망친 주범이었을까. 하지만 섬세하고 유약한 감수성이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체념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체념의 행렬에 속속 끼어들고 있다. 희망을 포기하고, 꿈을 포기하고, 짐승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길에 발을 올려놓는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미련하다고, 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이것에만은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말년에 쓰인 이 작품은 다자이의 자전적 소설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생애와 닮아 있다. 주인공 청년 요조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복사체, 아니 그 자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나 요조는 다자이만의 분신이 아니다. 요조는 나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 - 세상과 인간을 두려워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하고 그들의 허위와 기만에 몸을 떠는 - 의 분신이기도 하다.

작품 마지막에 다자이는 술집 마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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