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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다자이의 오사무의 <사양> <만년> <인간실격> 중에서
이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이 가장 좋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나는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졌으며,
그를 어떤 의미에선 연모하게까지 된 것이다.
<인간실격>은 서문부터가 무척 흥미롭다(그렇다, 좋은 작품은 첫 인상에서부터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한 남자의 유년과 청년시절, 그리고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러나 그의 삶이 종말에 이르렀음을 확신시키는 모습을 담은 세 장의 사진에 대한 감상평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진의 관찰자는 세 장의 사진 모두에, '딱히 무엇 때문이랄 수도 없이 보는 사람을 섬뜩하고 역겹게 한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그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남자의 수기가 뒤이어 펼쳐진다. 부끄럼 많은 생애,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생애가.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이웃 사람들은)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중략)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16~17쪽]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전혀 자신할 수 없었던 사람 요조. 그러나,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요조는 '익살'을 무기로 삼기로 작정한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하자, 그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고 작정한다. 그렇게 해야 인간과의 가느다란 끈이나마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도회지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그리고 술과 담배, 그리고 창녀와 같은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요조는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거기에는 '호리키'라는 대학생이 큰 일조를 했다. 우연히 만난 '도회지 건달' 호리키는 돈을 쓸 줄도 몰랐던 요조를 끌고 다니며 그의 지갑을 비우는 일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냈으니까. 이제 더이상 집안 식구들을 속일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떨어지고, 난생 처음 극심한 궁핍함을 겪게 된 요조는, 어느날 밤 첫 자살을 시도한다.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 데 완전히 지쳐버린 한 유부녀와 함께였다. 하지만 그는 살아나고, 여자는 죽는다. 그가 아직 고등학생일 때의 일이었다.
집안의 외면과 학교로부터의 퇴학. 그를 지탱시키던 사회적 위치가 모두 박탈된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파멸해간다. 타산과 체면과 허위와 기만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부터 따귀를 맞고 짓밟히고 포박 당하여, 어두침침한 골방 속에 처박힌다. 인간을 두려워했던 그의 본능은 그야말로 진실된 것이었다. 요조의 돈을 물쓰듯 써댔던 호리키는 이제 별볼 일 없어진 요조를 타박한다. 그럼에도 요조는 자신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호리키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처절함을 느낀다. 그는 더더욱 술에 빠져든다. 가진 것을 모두 털어서 술을 사 마시고,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신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이다.
도쿄에 큰 눈이 내린 밤이었습니다. 저는 취한 채 긴자 뒷골목을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라고 작은 목소리로 되풀이해 중얼거리듯이 노래하면서 내리는 눈을 구둣발로 차며 걷다가 갑자기 토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최초의 각혈이었습니다. 눈 위에 커다란 일장기가 그려졌습니다. 저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더럽혀지지 않은 눈을 양손으로 쓸어 담아 얼굴을 씻으면서 울었습니다.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야? [123쪽]
완전한 폐인.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수재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그는 단 한 번도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폐인이 된다. 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린당한 패배자. 정신병원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고, 집안이 원하는 대로 시골에서 쓸쓸히 요양생활(말썽 피우지 않는 생활)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 그는 행복도 불행도 없이, 간혹 늙은 식모로부터 겁탈을 당하면서, 가끔 그녀와 부부 싸움 같은 것도 하면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134쪽]
체념, 결국 그것이 그를 망친 주범이었을까. 하지만 섬세하고 유약한 감수성이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체념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체념의 행렬에 속속 끼어들고 있다. 희망을 포기하고, 꿈을 포기하고, 짐승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길에 발을 올려놓는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미련하다고, 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이것에만은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말년에 쓰인 이 작품은 다자이의 자전적 소설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생애와 닮아 있다. 주인공 청년 요조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복사체, 아니 그 자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나 요조는 다자이만의 분신이 아니다. 요조는 나 자신의 분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 - 세상과 인간을 두려워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하고 그들의 허위와 기만에 몸을 떠는 - 의 분신이기도 하다.
작품 마지막에 다자이는 술집 마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