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심리학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김승욱 옮김 / 에코리브르 / 2005년 9월

  기억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심리학 책.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라는 책 제목은 이 책에 있는 여러 장(章) 중에 한 장의 제목이다. 이 주제 말고도 데자뷰 현상, 최초의 기억들, 외상과 기억, 망각 등 기억에 관한 여러 주제를 다룬다.

모든 주제가 다 인상 깊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절대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쓴 장이다. 셰라셰프스키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아무리 긴 목록이라도 다 기억할 수 있고, 한번 지나간 장소는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모든 단어나 장면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그가 숫자 3을 볼때면 우울한 사람이 떠오르고, 어떤 담벼락을 보면 짠 맛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강한 연상력때문에 그는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 사람의 초인적인 기억력, 나도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억력이 좋은 것만은 아닌 거 같다. 그는 기억을 너무나 잘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했다. 표정이 변하는 얼굴을 모두 다른 얼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잘 못했다. 생각을 하려면 어느정도 차이를 무시하고 일반화,추상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아주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이미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목록에서 새들의 이름만 골라내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또 한가지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사방(savant ; 학자, 석학이란 뜻)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뭔가 천재적인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몇자리 곱셉 암산을 순식간에 해낸다든지, 보는 것을 바로 똑같이 그려낼 수 있다든지, 한번 들은 음악을 바로 다시 연주할 수 있다든지 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 능력 또한 역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자폐증이 있으며, 다른 지능은 평균보다 훨씬 낮은 사람들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그동안 초인적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고, 또 심리학 연구까지 되어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쓰지못하도록 막혀있다 . 마치 엔진에서 과열을 막는 방지 장치가 있는 것처럼, 뇌의 기능을 어느 능력 이상 쓰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능이 고장난 사람은 보통사람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신 위 두 에피소드에 나온 사람들처럼 다른 기능들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 엔진이 과열해서 다른 기능들이 망가진 셈이다.

이 외에도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면서도, 매일 겪는 경험이다. 그렇게 신비하면서도 친숙한 주제기 때문에 더 흥미가 가는 거 같다. 이 책이 기억에 관한 모든 궁금증에 명쾌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해답을 주는 것보다 이런 저런 가설이 있는데 어느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라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기억`이란 것을 연구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얘기 일것이다. 그래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궁금해해본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왜 나이들 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가`라는 질문의 해답만 궁금한 사람을 위해서 답을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책에 따르면 아직 정답은 없지만, 대체로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첫번째 이유는 나이 들 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시간이 더 많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두번째는 젊을 때보다 삶이 단조로워 기억할만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기억이 시간의 느낌을 좌우한다니, 오래살고 싶으면 열심히 기억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일기,사진,비디오 같은 매체의 도움을 받아 기억하든지, 아니면 매일 색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