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한 평범한 일본 남자의 성공기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몇 번의 시련을 겪었으나 꾸준히 노력한 끝에 성공했다는 성공기 말이다. 이런 평범한 성공기가 다른 것들과 무엇이 다르길래 더 많이 팔리고 읽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성공의 종류와 무게가 다른 것과 차원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필즈 메달 수상자. 매년 수상자를 내는 노벨상과 달리 4년에 한 번,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낸 40세 미만의 2~4명의 수학자에게 주기 때문에 노벨상보다도 더 타기 어렵다는 그 상을 탄 사람이 이 책의 저자다. 보통 이런 성공이라면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아주 먼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여길테지만, 히로나카씨가 그걸 간단히 우리들 평범한 사람급으로 내려버린 것이다.

책에서 히로나카씨가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평범하다. 흔히 '하버드의 공부벌레들', 혹은 '카이스트 기숙사'류의 학생들 이야기책은 그들이 뭔가 특이하다는 점을 한두가지 일화를 들어 소개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이야기조차 없다. 그저 담담하게, 옆집아저씨 인생 이야기처럼,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잘 믿지는 않는 그런 인생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미국 유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미국적 사고방식'의 장점을 진부하게 이야기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게다가 일본인다운 겸손함까지 덧붙이니 한 술 더 뜬다. 일례로 저자가 체념할 줄도 알아야한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그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중략).. 그런데 그 아이는 전혀 복습을 하지 않아서 다음 날이 되면 전날에 배운 것을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런 일이 계속 되어서 나는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지난 번에는 잘 했는데 왜 지금은 못하지?"라고 물었다. 그 아이는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난 바보니까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중략) ...
이런 경우에 부딪힐 때마다 그 아이의 명언을 소리내어 말해본다. "난 바보니까요" 그러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다. ....


'난 바보니까요' 같은 말은 요새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성공기에서 금기시하는 말이다. 그 책의 저자들은 끊임 없이 긍정적인 태도로 나아가 원하는 것을 얻기도 바쁜데 웬 자기 비하를 하느냐며 질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사람 심리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애가 깊고 성취욕이 높은 사람은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쉽게 자기 비하에 빠지므로 일부러라도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히로나카씨처럼 원래 관조적인 사람은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 자기 페이스를 찾지 못하는 것이 더 안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로 자신을 다독이며 꾸준한 길을 걸어간 것이다.
결국 욕구와 목표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욕심을 내라고 말하는 성공서들보다 히로나카씨의 방식이 좀 더 평범한 사람의 심리에 잘 맞는 면이 있다.

이렇게 평범함만을 강조하다보니, 히로나카씨가 성공한 필연성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필연성은 있다. 단지 그게 너무 당연해 잘 모를 뿐이다.



나는 이 논문을 다시 읽어 보고 새로이 알아낸 것이 있다. 8년 전에 이 문제를 알게 된 후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늘 이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수학을 배우고 창조해 왔다는 것이다...(중략)...
물론 나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러나 각각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던 세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어서 "알고 보니 이미 문제는 풀려 있었다." 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그렇다. "알고 보니 이미 문제는 풀려 있었다." 이것이 성공의 핵심이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딱 떨어진 것이 아닌, 창조의 기쁨을 느끼고 알고자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꾸준히 그 길을 걸어오다보니 얻는 그런 성공 말이다. 운이 따랐다는 점을 일부러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생, 그리고 그 다음에 성공을 말하는 것. 성공 이후의 삶 뿐 아니라 성공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소소한 창조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성공만을 노려보고 움켜쥐려는 사람이 의외로 쉽게 얻지 못하는 '성공의 필연성'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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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1 22:02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