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트루먼 커포티, 조르주 심농 ....3명만 뽑으라니 너무 잔인하네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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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witter.com/dangerousshop/status/365433331283808256 https://twitter.com/dangerousshop/status/362186516241448961 https://twitter.com/dangerousshop/status/357400526536704000 두번째 컵을 설겆이하다 깨먹어서 세번째 컵까지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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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론리하트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주인공 미스 론리하트의 실제 이름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고, 그가 읽는 온갖 불행을 호소하는 편지들과 그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커리커처만 묘사된다. 미스 론리하트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그의 환상인데, 문제는 그 환상의 묘사라는 게 다소 진부하리만치 너무 직접적인 비유들로 이뤄져있다는 게(거칠게 말해서 프로이트적? 사실 프로이트의 책 자체는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른바 프로이트적 묘사라든가 설정이 나오면 왜 이렇게 촌스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현재 시점에서 읽기엔 그리 생동감 넘치지 않는다. 환상을 제거한 상태의 그의 심리 묘사라든가 미스 론리하트와 쉬라이크가 주고받는 궤변이 주는 효과가 훨씬 낫다.

미스 론리하트는 예수가 되길 꿈꾸지만 그 꿈조차 지나치게 얄팍하여, 결국 자신이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농담의 희생자'가 되었음을 알게 도었다는 자각조차도 '스스로가 스스로의 환상의 희생자가 되었음'을 파악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그 자신이 결국 예수와 하나가 되었다는 환상이야말로 그가 자아낸 최고의 자기기만이다. 결말은 그 무지가 빚어내는 아이러니를 쓰디쓴 냉혹함으로 짤막하게 묘사한다. 실패한 구원자, 실패한 예술가. 이 작품이 <위대한 개츠비> 등과 비견된다고 들었는데, 개츠비(라는 일반적 개인)에 비해 미스 론리하트는 훨씬 더 젊은 예술가에 가깝다. 어쩌면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쓰면서 가질 수밖에 없을 그 자기반영적 사고가 이 작품을 더욱더 침울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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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영화 <실비아>를 보았을 때, 영화 자체는 별로였지만 딱 한 장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실비아 플라스가 테드 휴즈와 결혼하고 난 뒤, 휴즈는 바닷가를 거닐며 자신의 시를 구상하고 있을 때 플라스는 빵을 굽고 저녁을 준비하며 청소를 했다. 그 모든 가사 노동이 끝나고 난 뒤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지만 그녀는 시를 한 줄도 쓰지 못한다. 공백의 시간을 견디다 못해 그녀는 책을 펼쳐보기도 하지만 역시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실비아 플라스는 천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천재 작가와 결혼하며 황홀한 꿈을 꾸었지만, 결혼 후 그녀에게 닥쳐온 것은 예전보다 더한 좌절과 환멸이다. 그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꿈꿔왔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 있다는 불안감,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불신. 그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했지만 그 당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 좌절이야말로 플라스의 본질을 이루는 어떤 특정 부면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몇몇 시들은 결코 평온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토악질하듯 분노를 씹어뱉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아도취적일 정도의 연민을 읊었다. 어찌 보면 미성숙해보일 정도의 그 좌절감이야말로 그녀를 어떤 숭고함의 대상으로까지 밀어올리는 추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책을 읽는 여성'에게 언제나 매혹되었다. 그런 이미지 자체가 일상에서는 무척 rare한 것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하철 안에서, 음식점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 여성에게서는 tension이 있다. 이 책의 다음 장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호기심이거나 또는 일분일초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그런 결의 말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심각한 책은 아니다. 여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독서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쉽게쉽게 써내려간 그런 재밌는 책이다. 기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읽는 여성'에 대한 어떤 뚜렷한 상을 얻게 된다기보다는, 독서 행위에 있어 창작자만큼 '독자'라는 위치가 어떤 중요함을 획득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게 한다는 데 의의가 있는 듯. 내용은 어느 정도 '계몽적'이다. 플로베르의 그녀, 보바리 부인은 아무래도 부적절한 독자의 예로 되풀이 불려 나온다.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나 자신이 보바리 부인의 아류작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나. 어떤 종류의 열광이든 격렬함과 감정이입, 일방향적인 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나. 창작의 행위에서 피어나오는 자아도취의 열광의 분위기는, 수용자가 그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황홀한 교합의 순간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책의 이 구절 저 구절, 이 인물 저 인물, 이 사건 저 사건을 수집하고 배열하며 받아들이는 행위야말로 독자의 삶의 어느 특정 부분을 창작해내는 중요한 인자가 아닌가.

그러므로 나의 경우에, 멋지고 만족스런 독서에는 항상 에로틱한 분위기가 동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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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MYTHAGO(음절이 두번째에 온다). MYTH(신화)와 IMAGO(심상)의 결합. 그리고 '이상화된 신화 속 등장 인물의 이미지'. 로버트 홀드스톡의 [미사고의 숲]은 인간의 근원적인 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할 때, 혹은 인간이 지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 훨씬 이전부터 있던 자연과 충돌해야 하는 순간 그들의 염원과 희망은 영웅을 만들어내어 왔다. 돌, 물, 나무와 같은 자연적 존재들이거나 '아서왕, '로빈 후드' 등과 같은 신화적인 인물들이 그 소산물이다.
여기 어떤 숲이 있다. 그 숲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신에게 감추어진 비밀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그 숲과 감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만의(혹은 인류의) 미사고를 이끌어내는 매혹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헉슬리 가의 남자들은 홀린 듯이, 주술에 걸린 듯이 그 숲에 들어가려 한다. 녹색 옷을 입은 대지의 여신 귀네스, 그녀는 헉슬리 가의 세 남자를 한꺼번에 매혹시키지만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내는 자신의 운명을 따라가야 한다. 이제 헉슬리 가의 남자들, 아버지와 두 아들은 그 운명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증오하고 사랑하며 상처입힌다. 그들은 스스로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아웃사이더'와 '혈족'이 된다. 예정된 운명은 피를 흘려 대지에서 벌어진 죄를 정화하고, 역할이 뒤바뀐 카인과 아벨은 평화와 죄악을 구분짓는 이름이 되어간다.
로버트 홀드스톡의 [미사고의 숲]은 이를테면 신화와 전설에 관한 메타적 글쓰기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세계의 수많은 구비전설들 사이의 유사점을 입증하려 노력했던가? 홀드스톡은 그 어떤 논문보다도 훨씬 흥미롭고 황홀한 증거를 들이댄다. 그 모든 이야기 속에 인간의 공통적인 감정과 심상이 녹아들어가 있음을, 그리하여 인류는 하나의 뿌리에 나왔음을, 그리고 신화를 탐구하는 과정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PS: [미사고의 숲]은 홀드스톡의 '미사고 사이클'의 1부에 불과하다. 이후에 그는 미사고에 관련한 5권의 책을 더 썼고, 지금 또다른 7번째 이야기를 구상 중이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 나라에 나머지 책들이 번역될 수 있을까? [미사고의 숲]을 번역한 열린책들에선 그럴 계획이 없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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