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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강명관 지음 / 길(도서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책 앞장에 써놓은 메모를 보니
2007년 1월 수유너머,
율군이 선물로 준 상품권으로 구입
이렇게 쓰여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율군은 참 내게 벅찬 인물이다
하여간
구입한지 3년 만에
책이 눈에 띈 이유는
강명관,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2006년에 그분의 강의를 들었다
<열녀>
그 비슷한 주제였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차, 잘못 왔구만... 싶더라
투박한 촌사람의 외모였고
부산사투리가 기가 막혔다
거기에 한문학 교수니 게임오바.
삼십 평생 <열녀>와는 아주 먼 인생을 살아온 내게
부산아저씨가 아주 칼을 꽂으시겠구만... 싶었다
그런데
두둥. 반전
뭉퉁한 사투리로
조선사회에 뻑큐를 날려주시는데
삘 꽂힌 나는 강의실에서 유독 오바스럽게 웃어제꼈다
해방감을 느꼈다
강의 후, 그분이 쓴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읽고도
비슷한 해방감을 느꼈다
각설하고,
이 책은 저자가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한 글들을 묶은 거다
매우 짧은 칼럼들이 80여편 들어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옛 글을 인용해 오늘의 얘기를 풀어낸다
명대(明代)의 사상가 이탁오는 '동심설'에서
어린 아이는 사람의 최초의 형태요, 동심은 사람의 최초의 마음이다. [......] 동심은 왜 갑자기 사라져 없어지는 것일까.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으로 들어와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 동심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다 자라면서 도리(道理)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 동심은 또 사라지게 된다
다시 이탁오를 인용한다. 그는 '성교소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쉰 이전에 정말 한 마리 개였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서 짖을 뿐이었다. 왜 짖느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실실 웃을 뿐이었다
첫번째 글에 인용된 옛글이다.
이탁오의 두 글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랜 시간 세대를 거듭하면서 우리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수직적, 수평적 경계에 대해
80여편의 글은 "왜?" 라고 묻는다
위태로운 고정관념에 대한 일침이다
내겐 또 하나의 해방서,라고 해도 좋겠다
날카로운 옛 글도 있는 반면
깊은 울림을 주는 글들도 있다
구양수(1007~1072)의 '추성부'를 외어본다.
구양자가 한밤중 책을 읽고 있노라니, 서남쪽에서 웬 소리가 들린다. 섬뜩한 느낌이다. 이상도 하지. 처음에는 뭔가 우수수 쓸쓸한 바람 소리 같더니, 갑자기 내달리고 뛰어오르고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하더니, 난데없이 한밤중에 파도가 치는 듯, 비바람이 몰아치는 듯하고, 물건에 부닥치자 쟁강쟁강 쇠조각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적진으로 내달리는 군대가 재갈을 입에 물어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사람과 말이 행군하는 소리만 들리는 듯고 하구나. [......] 슬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니라.
올해 가을에는 귀를 기울여 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소동파의 '적벽부'를 외웠다
나와 당신은 [......] 한 장의 나뭇잎 같은 조각배를 타고, 술바가지와 술동이를 들고 서로 권하고 있노니, 천지에 하루살이가 붙어있는 격이요, 아득한 저 창해(滄海)에 빠진 좁쌀 한 알 신세로다.
이 글의 느낌은 아직도 해독이 안되고 있다
두고두고 가늠해봐야지 싶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때가 있다
필히 기회가 된다면
강명관 선생님을 모시고 재미있는 뭔가를 하고 싶다
80여편을 죽 읽다보니,
유독 관심이 가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연암 박지원이다
난다언니네서 훔쳐와 입닦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
조만간 꼭 도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