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구석의 채식 식당
오다 아키노부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책 표지를 봤을 때는 아기자기한 이미지가 가득하겠다는 기대를 했었다.

채식 식당에 대한 이야기니까 요리 사진이나 가게 분위기 정도는 사진으로 보여주는 줄 알았다.

요즘은 텍스트보다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회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텍스트를 강조하는 책이다.

글에서 카레향기가 나기도 하고 향료를 느낄 수도 있다.

분명 일본인 작가인데 번역책이라는 느낌이 없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 글을 쓴 느낌이랄까...

번역가 김민정 님이 작가라 그런가보다.

일본어 번역을 꿈꾸는 나에게는 유려한 번역투가 아닌, 수수한 우리 말투의 표현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저자는 출판 편집 일을 하다가 식당을 개업하면서 지냈던 그동안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중년의 남자와 채식'이 그다지 썩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편견이리라. 건강을 위해 채식을 실천했던 것이 아닌, 우연찮게 채식을 접하고 접해보니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다 보니 자주 실행하게 되고, 자주 실행하다 보니 좋아지고, 좋아지다 보니 채식에까지 이르게 된 배경 또한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비싼 채식요리를 최대한 저렴하게, 자극적이지 않은 채식요리에 양념을 더해 맛있게, 고군분투하며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원하는 것을 실행한다. 이 부분이 일반인과 많이 다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명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일하다가 다시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 가고 싶다고 가고, 나와서 편집에 대해 1도 모르는데 편집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책도 만들고 마지막엔 식당까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나. 저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행하고 또 꿋꿋이 해낸다. 그 일들 중에 왜 힘든 일이 없겠는가. 모든 일들이 마찬가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따라오는 법. 힘든 일들을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본인의 의지를 더해 살아낸다. 나도 그렇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전해준다.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니다. 채식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의 삶과 철학을 아주 소소하게 풀어낸다. 옮긴이는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이것이 우리 삶을 가늠하는 잣대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시절이 되었다. 동물을 먹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그 대답이 자신의 인생을 말해주는 척도가 된다'(p.310)고 끝마무리에 말한다.

 

어떤 일이든 우리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의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단, 오롯이 '나'만 존재할 것이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그동안의 내 선택지를 곰곰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p.58

프리랜서 편집자의 일은 시간과 체력을 잘라서 파는 것과 같다.

p.120

채식에도 선민 의식이 필요할까? 꼭 유기농이어야만 할까? 애니멀 아이츠 입장에서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싸고 맛있는 채식 식당도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

p.221

비난을 각오하고 말하자면, 어쩌면 인간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통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열심히 양파를 볶거나 육수를 내는 것처럼 한 가지 작업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만 맛의 영역에 노력이 침법한 결과 맛있는 음식이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만 얻을 수 있는 개념으로 정착해버린 것은 좀 안타깝다.

p. 242

이 첫 사회운동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인지하게 된 사건이다. 탄원서 쓰는 법도 몰랐고, 구청을 설득하는 방법도 몰랐다. 계획적인 지자체와 비교해 우리는 ‘성의‘로만 무장해 있었다. 성의를 다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우리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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