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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패러독스 -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잭슨 카츠 지음, 신동숙 옮김 / 갈마바람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으로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솔직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부제인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를 보고서야 여성 폭력에 대한 내용인가 여럼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남성의 문제"라는 부제가 자칫 여성 폭력이 남성 탓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살짝 긴장했다. 내용은 남성 탓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이 앞장서야 여성 폭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책의 목차를 잠깐 살펴보면 <책 제목 '마초 패러독스'에 관한 설명 / 1장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 2장 사실 바로보기 / 3장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 4장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기 / 5장 남성 혐오? / 6장 성적 중립의 틀에 갇히다 / 7장 방관자들 / 8장 인종과 문화 / 9장 성폭행은 문화의 산물이다 / 10장 죄의식 속의 쾌락:음란물, 매춘, 스티립쇼 / 11장 MVP:운동선수와 해병 / 12장 아이들을 잘 가르치자 / 13장 이제는 더 많은 남자가 나설 때다>로 볼 수 있다. 나처럼 제목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을 위해 제목 선정 이유를 자세히 풀어놓았고, 여성 폭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남성의 문제라고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13장에 걸쳐 한 장 한 장 빠짐없이 모두 다 자세히 풀어 놓았다. 딸만 둘인 엄마의 입장에서 모든 내용이 마음에 콕콕 와 닿는다.
최근 뉴스에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리고는 사귀는 사이에 그럴수도 있지, 사귀는데 때렸다고 얼마나 세게 때렸을까, 그런 걸로 신고도 하고 세상 참.. 이러면서 은근슬쩍 폭력이 아닌 그냥 사랑싸움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자 피해자 입장에서는 후유증이 크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만나는 것도 많이 힘들어진다. 단순하게 사랑싸움으로 볼 문제는 분명 아닌 듯하다.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는 것, 우리가 여성 폭력의 인식에 대해 바꿔야 할 첫 단계이다.
저자는 모든 폭력이 문제지만 특히 여성, 아동 폭력에 대해 남성이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아닌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남자 입장에서 나는 그렇지 않아, 나하고는 상관없어 라며 방관의 자세를 보이는 대부분의 남성에게 "남성인 우리가 아끼는 여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는 남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남자와 여자의 삶은 나눌 수 없게 서로 얽혀 있다. 남녀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며, 한 침대를 쓰고, 한 상에서 밥을 먹는다. 함께 아기를 만들고, 자식들을 낳아 키운다. 그러니 여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남자들에게도 일어나는 셈이다(p.41)"라고 말한다.
"여성 폭력에서 남성의 책임이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표현 방식인 수동태를 설명한다. 다음 문장을 보자. 1. 존이 메리를 때렸다 / 2. 메리가 존에게 맞았다 / 3. 메리가 맞았다 / 4. 메리는 자주 매를 맞는다 / 5. 메리는 매 맞는 여성이다
수동태 문장은 그저 솜씨 나쁜 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위 예에서 수동태가 주어를 존에서 메리로 바꾸어놓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존이 뒤쪽으로 밀려난 것은 존이 우연치 않게 우리 인식의 지도에서 밀려났음을 의미한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존이 종적을 감춤으로써 '매 맞는 여성'이라는 메리의 정체성이 생겨났다."(p.199) 이런 식으로 신문 기사나 언론에서는 가해자인 남자의 책임을 감추고 피해 여성을 드러내면서 이 여성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포커스를 맞추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가면 언론이 원하는 대로 모르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뉴스와 신문과 포털의 기사가 기존과는 다르게 인식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저자는 강연이 끝나고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듯한 남학생이 한 말이라며 소개했다. "도대체 어떻게 여자를 성폭행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되요. 여자들은 연약한 꽃 같아서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인데 말예요.(p.108)" 이 학생의 표현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다. 우선 이렇게 생각한 남학생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왜 여자를 연약한 꽃으로 생각하고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넘겨짚은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교육의 문제는 아닐까. 놀이터나 실외 활동을 하다보면 "여자친구잖아, 남자가 양보해야지. 남자가 보호해줘야지"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여자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 남자의 당연한 예의처럼 우리는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여자는 꽃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강인한 존재이기도 한데, 우리 아이들에게 이미 여자는 약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여자를 키우는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아이가 이게 뭐니? 여자는 얌전해야지, 그런 건 남자들이나 하는 거지. 무심코 이런 말을 아이에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또한 저자는 모든 여성 폭력을 남성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며, "남자들 각자가 사랑하는 그 여자들에 관련된 문제라고 인식(p.93)"하고, "폭력적인 남자에게서 여자니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도덕적 의무(p.102)"라고 말한다.
소개한 내용 이외에도 아, 그렇구나 탄식이 절로 나오는 내용이 많은 책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페미니스트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여성폭력에 대해 저자가 여자라면 공감하지 못할 내용을 남자가 말하니까 정말 남자가 나서야겠구나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책이다. 남자라면 그동안 몰랐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그동안 숲에 숨어있던 남자들에게 앞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남자 여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