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살인범
마리온 포우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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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모성(母性)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여성이 나온다. 이혼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자 싱글맘,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미혼맘이자 싱글맘,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거의 버리다 시피 한 뒤, 새 가족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전업맘. 아무래도 내가 엄마이다보니 이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나보다.

모두에게 육아는 힘들어 보인다. 온 마을이 힘을 모아야 아이 하나를 키울 수 있다는 옛말이 지금의 힘든 육아를 대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이는 옆집에 살고 있는 로지타와 안나(딸)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갔다. 지적장애를 가진 레이는 순수하지만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 물고기를 사랑하고 빵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 일터인 제과점에서는 혼자 빵을 만들고 있다. 순수하고 착한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로지타와 안나를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리나는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애런이라는 사고뭉치 어린 아들이 있다. 어린이집에서도 버거워하는 다루기 힘든 아이라 엄마인 이리나 역시도 힘들긴 마찬가지. 화를 냈다가도 곧바로 자괴감에 빠지는 일반적인 워킹맘이다. 도와주는 남편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바랄 수는 없는 싱글맘, 그나마 친정엄마 보렌스가 곁에 있어서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친정엄마는 손주보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이리나는 우연히 친정엄마의 수족관을 관리하다가 '레이'에 대해 알게되고 레이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판단해 그를 도우려 한다.

이야기는 진짜 레이가 살해를 했을까에 관한 의구심을 계속 갖게 한다. 레이가 아니라면 누굴까? 로지타는 남자를 잘 다룰 줄 아는, 남자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줄 아는 여자다. 레이는 로지타를 가족으로 생각했지만, 로지타는 레이를 이용만 했다. 모든 흐름은 레이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레이가 살해했을 것으로 이끌어 간다.

보렌스는 어린 레이를 기숙학원에 보내고 자신이 가끔 찾아갈 뿐 가족으로서의 엄마 역할은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남편과 이리나가 가족이었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보살피기 힘든 레이는 과감하게 버려졌다. 이리나는 애런에게 휘둘리지만 자신을 더 많이 위하고 있음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로지타는 안나를 TV앞에만 앉혀둔다.

422쪽의 결코 적은 양이 아닌 분량임에도 읽는 속도는 빠르다. 누굴까를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자 셋은 모두 엄마이지만 모두 헌신적이지는 않다. 여기에서 과연 엄마들은 무조건 헌신적이어야 할까? 생각하게 한다. 나도 엄마인 입장에서 우리는 모두 그렇게 배웠다. 엄마는 헌신적이라고. 물론 내 삶에서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무조건적인 헌신을 우리는 왜 기대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신적이지 않은 엄마들은 모두 나쁜 여자로 낙인찍인다. 육아, 살림, 일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했던 그녀들이 선택과 결과가 안타깝고 속상하다.

p.29-변호사로서 나는 의견을 절충하고 최고의 타협안을 찾고 적절한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훈련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러나 내 아들의 어린이집 교사 앞에서는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꼭지가 완전히 돌고 말았다.

p.38-법조계라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조차도 ‘까다롭기 짝이 없는 세 살배기의 변덕‘에 시달리는 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p.98-나는 휴대폰의 종료 버튼을 누르고 가방에서 마지막 남은 티슈를 꺼내 구두를 닦았다. 구두에 꼴사나운 얼룩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애런의 얼굴을 닦아줄 티슈는 남아있지 않았다


p.194-나는 다리를 마구 버둥거리며 소리를 꽥꽥 지르는 아이를 옆에 끼고 레스토랑을 나와야 했다. 나는 눈곱만큼도 남지 않은 품위를 지키려고 일부러 머리를 꼿꼿이 쳐들었다. 하지만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남들 앞에서 민망한 꼴이나 당하는 무능한 엄마라니.

p.367-엄마 노릇은 한마디로 모순 그 자체야. 육아에 도가 틀 무렵에는 아이들이 다 커서 집을 나가 버려. 그리되면 그간 습득한 지식과 노하우는 아무 쓸모가 없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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