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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유튜브 리뷰: https://youtu.be/Rw4_yFWMpY8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출간 이후 자주 눈에 띄는 책이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달의 책’으로 소개한 뒤로는 더 많은 관심을 모았고, “신선하다”, “독특하다”, “묘하게 공감이 간다”는 반응도 종종 들려왔다. 나 역시 그 매력이 궁금해 책을 집어들었지만 막상 마주한 인상은 조금 달랐다.
가장 먼저 다가온 건 문장의 분위기였다. 유행어, 신조어, SNS 밈 같은 동시대의 언어를 거리낌 없이 끌어들인 서술 방식은 분명 실험적이었다. 문장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장면처럼 엮어냈고, 그 조각들이 모여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현실의 언어를 문학의 리듬으로 이식하려는 시도는 흥미롭고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또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기보다는 인물이 놓인 환경이나 사회적 배경이 이야기를 이끈다. 인물의 내면은 선명하게 그려지기보다는 암시되며, 성격은 구체화되기보다는 스쳐 지나간다. 독자는 그 빈틈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누군가에겐 이런 열린 구성이 더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오히려 그 여백이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작가가 의도한 미학일 것이다. 인물을 고정된 틀에 가두기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 독자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표정을 상상하고 마음을 그려보게 만드는 서술. 어떤 이에게는 이 모호함이 더 생생한 감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인물이 겪는 사건을 통해 감정의 궤적이 그려지고 그 과정에서 인물이 조금씩 변해가는 서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같은 배경 속에서도 인물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고 그 차이를 통해 이야기가 살아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처럼 내면의 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 그 인물에게 오래 머물기란 쉽지 않았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한 장면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시간을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은 감정이나 사건을 길게 붙잡지 않고 빠르게 다음 장면으로 나아간다. 인물의 표정이나 말투, 감정의 미묘한 여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더 중시하는 방식이다. 담백하고 절제된 문장은 세련되지만 동시에 감정의 결도 함께 옅어지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인물들은 뚜렷한 얼굴을 남기기보다는 어딘가 낯익은 감촉만을 남긴 채 흐릿하게 스쳐간다. 각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이 직접적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주변 상황이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는 그 공백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개의 이야기를 지나온 뒤에도 결국 떠오르는 인물들은 모두 내 해석을 통과한 비슷한 형상으로 겹쳐지는 듯한 인상이 남는다.
모든 이야기가 모든 독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이 생략과 여백을 통해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서사를 완성해나갈 것이다. 나에게는 조금 낯선 감각의 소설이었지만 그 낯섦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감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가장 ‘인터내셔널’한 면모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