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은 1956년 중국 랴오닝에서 태어나 서른살인 1985년 미국으로 간 중국계 미국인이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그가 영어를 시작한 건 스무살이 넘어서라니, 놀랍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1999년에 전미 도서상, 2000년에 펜 포크너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고, 이제는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기다림"은 장편 소설이다.
1963년 선양 시市의 육군의학교 시절, 주인공 쿵린은 고향에 있는 양친의 간청으로 얼굴도 모르는 여자 류수위와 결혼하게 된다. 쿵린이 실제로 그녀를 만나 보니 박색에다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전족으로 발 길이가 10센티미터였다. 쿵린은 도무지 그녀에게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몇 년 되지 않아 아이를 하나 낳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아예 근무지인 무지 시의 육군병원에서 일 년 내내 지내다가 여름 휴가철 일주일만 시골 집에 내려갈 뿐이고, 그때에도 아내와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 같은 근무지의 간호사 우만나와 정이 들면서부터는 여름 휴가철마다 아내 류수위를 데리고 시골 인민법원으로 가 이혼을 청원한다. 그때마다 번번히 기각 당하길 십 수 년. 우만나는 쿵린을 기다리다 늙어 마흔을 넘었고, 혼외정사가 발각될 시 큰 고초를 겪게 될 것을 두려워한 그들은 오랜 시간을 정신적 동지로만 지낸다.
쿵린의 근무지인 육군병원에는 '부부가 18년 동안 별거가 계속될 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혼이 가능하다'는 규칙이 있다. 쿵린과 우만나는 이제 그 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께스는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려야 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썼지만 쿵린의 18년 기다림이 그보다 못할 게 뭘까. 드디어 1984년, 18년간 별거한 부부의 이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었고, 쿵린은 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처 류수위와 딸 화를 무지 시로 데려와 일자리를 얻어주다. 그리고 곧 이어 우만나와 재혼을 한다.
그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는 눈물겹도록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인생이란 누군가의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고,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이 소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진의 다른 소설들은 모두 한 사람(왕은철)이 번역했는데, 이 소설만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했다.
"멋진 추락"은 단편집이다.
뉴욕(특히,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플러싱)에 거주하는 중국 이민자의 다양한 인생사를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은 ‘하루하루를 잘 버텨낼 수 있도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늘 억누르며 살아’(p.326, “벚나무 뒤의 집”)야 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어린 손자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는 이유로 중국 이름 뿐 아니라 성姓까지 버리면서 ‘미국식 이름’을 지어달라고 떼쓰고(“원수 같은 아이들”), 교수 같은 고학력자일지라도 정년보장을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초조해하며(“영문학 교수”), ‘배우자를 미국으로 데려올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위로해주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한시적으로 동거’(p.273, “계약 커플”)를 하거나, 동남아 여자인 척 하며 몸을 팔기도 하고(“벚나무 뒤의 집”), 심지어 자살을 결심하고 뛰어내릴 수 밖에 없는(“멋진 추락”), 그런 사람들이다.
작가는 중국 이민자들의 어쩔 수 없는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 역시 미국의 한 부분이고, 반복되는 일상이며, 충분히 희망적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진의 단편소설은 다섯 권이 번역되어 있다. 원서는 네 권이라는 얘기가 있다. (네권을 조각내어 다섯권으로?)
"멋진 추락" 외에 다음의 단편집들도 읽고싶다.
"남편 고르기"는 2006년 출간되었고, 지금은 품절상태다. 중고책을 사기는 쉽다.
위의 책과 같이 2006년에 출간된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는 역시 품절상태이다. 중고책을 사기도 쉽지 않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의 표지를 보고, 어린이 동화집인줄 알았다. 대체 왜 이런 표지로 만들어놓은걸까?
"카우보이 치킨"도 단편집이다. 여덟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카우보이 치킨'은 중국의 소도시에 문을 연 미국의 패스트푸드점 카우보이 치킨을 배경으로 한다.
"니하오 미스터 빈"은 장편소설이다. 사원 아파트 당첨에 떨어진 후 불만을 얘기했다가 회사에서 눈총을 사게 된 소시민 가장 '샤오 빈'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