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는 좀 독특한 작가다. 문체가 개성있고, 가끔 문단의 형식을 파괴해 놓기도 한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박민규의 등단은 "지구영웅전설"로 2003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으면서다. 제목처럼 당황스러운 소설이다. 장정일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 이상으로 기발하고, 다카하지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만큼 혼란스럽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읽고 나면 그 재기발랄한 신선함에 푹 빠져들거나, 유치한 상상력에 실망하여 "뭐 이런 게 다 있어?"하며 책을 던지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같은 등장인물을 통해 한없이 가볍게 ‘승화’시켰다는 평이 일반적인데, 파장이 커졌을 경우(그럴리야 없겠지만) 작가를 추궁하면 “농담인데 뭘 그래?”라고 비웃을것 같다.

 

 

박민규를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부터 읽는 게 좋다. 200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무 번 이상을 소리 내서 웃었다. 야구를 소재로 했지만, 야구를 좋아하지 않거나, 심지어 야구에 대해 전혀 몰라도 상관 없다.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프로'에 대한 강박관념을 얘기하고 있는데,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더 없이 즐거운 추억을 되살려주는 장면이 많다.

 

 

 

 "카스테라"는 그의 독특함과 유우머를 잘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슬픔과 곤혹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재치, 카프카의 "변신"에 견줄만한 우화적 상상력이 압권이다. 다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카스테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가 좋았다.

 

 

 

 

 

"핑퐁"은 "지구영웅전설" 계열의 황당무계류 소설이다. 

 

사람들은 ‘핑퐁’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서, 이 책이 탁구에 관한 위대한 기록임을 짐작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핑퐁’이 탁구에 관한 얘기건 어쨌건 간에 박민규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온라인 주문 후 배송도 기다릴 수 없어 그냥 인근 서점에서 샀다. 읽어보니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서의 ‘야구’처럼 생뚱맞은 ‘탁구’ 얘기같기도 하고, 후루야의 “시가테라”나 “두더지”를 연상시키는 우울한 왕따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전 소설처럼 재미있고, 또 황당하다.

너무 맞아서 두개골에 금이 간 적도 있는 ‘못’과, 세트로 왕따를 당하는 ‘모아이’는 맞다 지쳐 휴식하는 벌판에서 ‘탁구대’를 만난다. 그리고 결국은 인류를 언인스톨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두고 탁구 시합을 한다. 이게 줄거리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고 있는 게 다행일 뿐이다. 이런 책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박민규 소설 중에서는 좀 낯선 부류다. 작가가 "나,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터넷서점 YES24에 연재 후 출간된 인터넷 소설이라 화제가 되었다.

 

박민규 치고는 너무 진지하고, 템포가 느린 소설이다. 표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고, 제목은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작품(Pavane pour une lafante defunte)이다. 주인공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못생긴 여자'라는 설정이고, 소설을 다 읽을 즈음에는 감동이 밀려오고, 여운까지 오래 남는, 뜻밖의 작품이다.

 

 

"Double 더블"이 가장 최신작인데, 2년 전(2010년 말)에 나왔다. 추억의 LP판을 모티브로 하여 두 권을 세트로 출간하면서 1권, 2권이나 상, 하가 아니라 sideA, sideB로 이름붙였다. 크기는 보통의 책 크기지만, 특이하게 정사각형의 판형으로 제작했다. 그것 말고는 그냥 보통의 단편집이다(책에서 노래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단편집 "카스테라" 이후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것이고, 작가의 유우머와 재치, 기발한 SF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박민규의 팬이라면 뭐 당연히 읽어야 할 것이고. - 이렇게 오랜만에 나오셨다니!

 

이번 작품집에서는, 직장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쓸쓸해져버린 중년 남자, 또는 은퇴 이후 황혼의 유감스런 인생을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누런 강 배 한 척"이라는 단편에서 육십이 다 된 나이의 한 남자는 인생에 대해 이제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렇게 이삼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게 괴롭고 슬프기만 하다. 아무 영광 없이 이십 구 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둔 지 사 년이고, 함께 사는 아내는 치매 초기에 걸려 종종 정신줄을 놓는데, 옛 직장 선배가 불러 나간 자리에서 사십만 원짜리 가시오가피를 덜컥 사가지고 들어오니, 시간강사로 일하는 딸이 전화를 해서는 교수 자리가 났는데 삼천만 원을 빌려주시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한다. 소설속에서 그는,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면서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side A에 실린 "근처" "누런 강 배 한 척"과 side B의 "낮잠"이 좋았고, 몇몇 작품("깊" 같은 먼 미래의 이야기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은 읽기가 힘들었다.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2009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때 시상식에 이러고 나왔다.

 

(당연하겠지만,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5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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