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 출간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후배가 물었다.
"선배, 하루키 잡문집 읽었어?"
"응, 읽고 있어."
"재밌어?"
"뭐, 그냥"
"무라카미 하루키가 뭐하는 사람이야?"
"뭐?"
생각이 복잡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이고,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하루키의 책은 출간 즉시(심지어 출간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는 선인세로 10억을 받아내는 인기작가이기도 하다. 며칠전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그저 '잡문집'인데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전에 나온 "1Q84"는 제목도 요상한데다가 시리즈가 세 권이나 되고 모두 600~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인데도 불티나게 팔렸다. 영국에서는 스위스제 고급 종이로 IQ84 한정판을 만들어 130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도 했다(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루키의 대표작인 "상실의 시대"는 우리나라에서만 100만 권이 넘게 팔렸고, 하루키 이름으로 국내 출간된 소설과 에세이, 여행기, 대담집을 다 모으면 아마 100권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르는 게 무슨 상관이겠나? 따지고보면 그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이외수나 공지영보다도 덜 유명할텐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 거 아니야?"
"그럴리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유명해?"
우리나라에서, 또는 전 세계에서 누가 더 유명한진 모르겠지만, 나는 베르베르보다 하루키의 작품이 더 좋긴하다.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 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댄스댄스댄스"는 장편소설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읽어야 할 분량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쉽기만 하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초기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도 흥미진진하고, 백암출판사의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2, 3권과 "슬픈 외국어"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같은 즐거운 에세이도 수두룩하다.
옴진리교 사린가스 사건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처럼 인상적인 작품도 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는 여행기 "먼북소리"처럼 매력적인 작품도 많다. 이렇게 나열하고보니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많다. 아직 하루키를 모른다면, 앞으로 읽을 수 있는 하루키가 얼마나 많은가. 아, 부럽다.
"아, 상실의 시대? 그거 전에 읽었다. 그거 쓴 사람이구나."
"응, 아무튼 뭘 읽어도 재밌어. 일단 한 번 읽어봐."
그리고 2012년 9월 현재의 이야기.
국내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다 읽은 거 같은데, 에세이나 단편소설들은 편집을 바꿔가며 재출간되기 때문에 뭐 정확하진 않다. 최근에(2012년 7월) 문학동네에서 하루키 에세이가 다섯권 시리즈로 출간되었는데, 일부는 기존에 나왔던 내용이고, 일부는 새롭다고 들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외 4권. 이게 또 유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