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없이 集解까지 종합적으로 갖춘 '이광호 번역본' 압도적 추천
고전번역 비평 최고 번역본을 찾아서_(2)주희의 근사록

2005년 06월 14일   이은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송대 여러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엮어놓은 ‘근사록’은 사서집주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내용도 어렵지만, 여러 대학에서 ‘대학생들이 읽어야 할 고전’으로 추천되고 있다. 근대 이후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근사록 번역본은 총 14종이며,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번역본은 10종에 내외이다. 그러나 관련 전공 교수·강사 20인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몇몇 번역본을 제외하고 시중 유통본의 50% 이상이 전문가들의 신뢰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이기동 本, 대학생 수준에서 읽기 좋아
근사록 번역은 우선 얼마나 사상을 깊이 흡수하고 내용을 충실히 번역했는가, 오역은 없는가, 엽채의 집해가 함께 번역되었는가, 현대어로 번역을 했는가 등을 중심으로 번역의 장단점이 가려지고 있다. 이번 설문에서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광호 연세대 교수의 번역을 가장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자 중 14명이 이를 추천했다. “가장 정확하게 번역해서, 오역이 거의 없다”, “송대 철학의 뼈대를 잘 드러냈다”, “기존 번역본들의 오류와 단점들을 대부분 수정했다”, “근사록은 원문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데, 성백효 역과 함께 집해 번역이 함께 실려 있는 본이다”, “구마다 해설을 붙여놓아 이해에 도움을 준다”, “한문투로 번역하지 않고 우리말답게 번역하려 노력했다”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퇴계학을 전공한 이광호 교수의 번역은 무엇보다 사상적으로 근사록을 이해하는 수준이 ‘심도있다’는 것이다. 이 번역본은 10년의 세월을 묵혀 나온 결과물인데, 오류를 줄이기 위해 한 학기 동안 대학원에서 강독하고, 수업보고서의 의견을 토대로 수정하는 작업도 거쳤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글의 맥락과 뜻을 밝히기 위해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광호 교수의 주석에 대한 전문가들 의견은 좀 갈리는 편이다. “역자의 관점이 드러나는 주석은 아니다”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사록에 대한 주석이 별로 없는 현 시점에서, 이는 대학생이나 일반 교양인들이 근사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원문이 같이 실려 있고, 책 뒷부분에 주요 용어 해설과 진영첩의 영역본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를 편역해서 실었다는 점 역시 이광호 번역의 미덕으로 꼽힌다.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의 번역본은 8명의 추천을 받았다. “현대어적 번역”,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이 교수는 근사록 번역에서도 그러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오역이 거의 없다”, “원문에 토를 다는 방식이 아니라, 쉽게 읽힌다”, “현대의 주자학 연구가 반영됐다”, “역자의 자득에 의한 해설이 자세히 달려 있다” 등이 이기동 번역에 대한 추천사들이다. 특히 이기동 역을 꼽은 이들은 “이광호 역은 대학생들이 접근하기에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는 반면, 이기동 역은 대학생 수준에 안성맞춤이다”라고 말한다. 즉 대학원생 이상의 전문가 수준에서야 이광호 번역이 가장 낫겠지만, 학부생들은 아직 소화하기에 어렵다는 것. 이기동 번역은 이 교수 혼자의 작업만은 아닌, 10명의 박사과정생들과 정기적인 독해를 거쳐 나온 것이다.


이기동 번역의 단점들도 지적됐다. 일단 원문이 없다는 점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또 “이 교수가 비유를 들어가며 해석하는 부분이 자의적”이라며, “비유로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은 자칫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원래의 의미를 상실케 할 수 있다”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광호, 이기동 역 다음으로 추천된 것은 故 정영호 서울대 교수의 번역본이다. 두명에게 추천을 받았다. 정영호 번역은 1990년대에 가장 처음 나온 번역본으로, 이학박사(식물학)의 연구결과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이는 번역상의 어투로 연결되고 있다.


제목번역이 그러한데, 이를테면 ‘道體類’편은 ‘우주의 도, 자연의 도’로, ‘僞學類’편은 ‘학문을 연마하는 요체’로, ‘致知’편은 ‘마음을 보존하는 길’등으로 풀어 썼다. 물론 본문은 여전히 고투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정영호 번역은 최근 오류를 수정하고, 활자체를 좀더 확대했으며, 의역투를 좀더 가미해 개정판이 나왔다.

박일봉 역, 추천과 비판 동시에 받아
1990년대에 전공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읽혔던 번역본인 박일봉 번역은 상반되는 의견들이 동시에 제출된 번역본이다. 일단 이를 추천한 교수들은 “주석이 이해하기에 좋도록 풀이돼있다”, “주자학 연구가 반영돼 있다”라는 견해를 내비친다. 그러나 박일봉 번역은 일본어판 중역본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역자가 근사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번역의 출처를 제대로 밝혀놓지 않았다”, “중역의 문제가 있다” 등을 단점으로 꼽고 있다.


각각 한명에게 추천을 받은 것은 성백효 번역과 이범학 국민대 교수의 번역이다. 성백효 역은 주해도 번역이 되어 있고, 또 한학자로서 워낙 정평이 나있기는 하지만, “대학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다”라는 게 난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고전의 맛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혹은 “한문을 잘 아는 학생의 경우라면” 성백효 번역을 권하고 싶다는 것이 몇몇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범학 번역은 역사학자의 산물이란 점이 가장 독특하다. 사실 근사록은 철학전공자들이 대부분 번역해왔는데, 이범학 교수는 철학자들의 관점은 한계가 있다며 근 8년동안 번역작업에 몰두해왔다. 6백개가 넘는 모든 조문에 제목을 단 것이 눈에 띈다. 저자가 현대사회에 맞도록 배려한 점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들을 주석에서 설명해 근사록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문문장도 최대한 의역했다. 그러나 타전공자인 만큼 아직 학계의 평가가 나오고 있진 않다.


취재 결과 몇몇은 “문제점이 있는 역본이다”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박일봉 번역, 성원경 번역처럼, “오역이 많다”라는 게 그 이유다. 사실 성원경 번역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이민수 번역본과 함께 “난해한 학술용어나 구절들을 성의껏 역주했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오역의 문제는 이런 장점을 무색케 한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번역본이 아니라면 차라리 근사록을 읽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말할 정도다.  


취재중 대부분 교수들은 “근사록이 대학생 고전목록에 올랐지만, 이해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뽑아놓은 경구들이 단편적이고, 맥락이 분명치 않은 경우가 많고, 교훈을 담고 있는 잠언들은 매우 섬세하고, 까다롭고도 낯설다라는 것이다. 퇴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근사록을 두고 “주역의 설을 인용한 것이 많아 의리가 정밀하고 깊어 초학자들이 갑자기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배우는 자에게 먼저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난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하나의 노하우를 알려주는데, 뒷부분부터 읽으라는 것이다. 앞부분은 성리학의 존재론 또는 우주론이 나와 형이상학의 극치를 설명해에 매우 어렵지만, 뒷부분은 오늘날의 학문을 하고 수신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충고들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추천교수 명단
강진석 한국외대(중국철학), 김교빈 호서대(동양철학), 김기현 전남대(동양철학), 김덕균 성산효도대학원대학(중국철학), 김수청 동아대(중국철학), 김한상 서울대(동양철학), 송인창 대전대(동양철학), 송희준 계명대(국문학), 안은수 한국유교학회(유교철학), 이광율 대구한의대(동양철학), 이광호 연세대(한국유가철학), 이동희 계명대(한국유가철학), 이범학 국민대(역사이론), 이상호 대구한의대(유교철학), 이성규 서울대(중국고대사), 이용주 성균관대(종교학), 장동우 연세대 (동양철학), 최영찬 전북대(중국철학), 한형조 중앙연(한국유가철학), 황의동 충남대(한국유가철학) 이상 총20명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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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5-06-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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