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시골 살 때 막연히 동경하던 도시에서 결혼하고 이혼하고 아이 낳은 여자가 되어서야 시골집이 그리워졌다고 했다. 꿈과 낭만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던 도시에 나와 살며 시골이야말로 꿈과 낭만의 보고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대 시절 어느 무렵부터인가 내게 '서울'은 누구보다, 무엇보다 간절히 욕망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서울 사람들, 서울의 대학, 서울의 문화, 서울의 힘... 농촌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서울은 '도시'의 대표 말이었고, 내가 세상과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하는 '그 모든 가능성의 땅'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지 않아 그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서울에 막 발을 내디딘 스무 살의 마음은 무척이나 불안한 것이었고, 그 불안함은 시간이 가도 쉬 걷어지지 않았다. 매 순간에 성실했고, 정의롭고자 노력했으며 앞을 보고 걷는 것을 잊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품은 꿈은 어느새 빗겨나 있었고, 그 빗겨난 자리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추스림과 동시에 닿지 않을 것만 같은 꿈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생활은 아주 가끔 머리 속에서나 안락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 불안의 땅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 불안의 어느 부분은 분명 내가 품어온 꿈과 연결되어 있으리라 믿었고, 아직은 그 불안정한 상태를 견딜만한 내성, '젊음'이란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내 생각일 뿐이었고,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했고, 자주 내게 서울을 떠나 볼 것을 제안했다. 그때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아직 포기할 수 없는 꿈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많은 부분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듯 단호했던 것은. 내 선택과 내 노력에 대한 자존심...

이렇게 내 속이 시끄럽던 어느 날 공선옥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으며 이렇듯 아등바등 버텨내고 있는 내 20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뭐가 그리 무서워 힘들고 지쳤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타인들의 염려를 자존심 상해하며 들어왔던가.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고, 언젠가 서울을 떠나게 되더라도 허무해하지 않을 든든한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여러 번 이 문장을 되뇌어 본다. 팽팽하게 긴장된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다. 그리고 사는 게 생각했던 것과 많이 어긋나더라도 괜찮다, 괜찮다며 누군가는 이 쓰린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그 사람이 작가처럼 뒤늦게 내려간 고향의 이웃집 할머니가 될 지, 지금 내가 여기에 머물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친구가 될 지, 아니면 그냥 나 자신일 뿐일지 알 수 없지만, 혹여 내가 나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제는 괜찮을 거 같다. 먼저 살아 보고 얘기해 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니스 파시즘
노혜경.진중권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페니스 파시즘. 미약하나마 전류가 몸을 관통하는 듯한 선정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내가 찾고 싶은 단어는 이것이었는지도 몰라. 특히나 요즘 나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여러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접할 때마다, 대체 지겹게도 반복되는 이 야만과 폭력의 구조가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문학씩이나 한다는) 박남철, 반경환의 여성시인 모독 사건을 중심으로 한참 논란이 되었던 운동 사회 내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 부산대 웹진 ‘월장’에 대한 예비역들의 테러(?) 등을 다루고 있다. 강준만, 진중권, 노혜경, 이명원 등 쟁쟁한 논객들이 비판의 칼을 들었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나의 분노심을 자극한 것은 박남철, 반경환의 여성 시인 모독 사건에 관한 글들이었다. 박남철 시인이 어떤 문학 잡지에 올렸다는 욕시(이걸 시라고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언어를 수단으로 한 폭력일 뿐이었다)와, 이를 두둔하고 나선 반경환, 그리고 이후 침묵으로 반응한 한국의 문학계까지,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나는 분노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가장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는 시인이자 교수 김정란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했다는 사실은 전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가 시인이든, 교수든, 여염집 처녀이든, 창부이든 폭력과 야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회의 남자들은 배웠다는 지식인이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마초든 성에 관한 의식수준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최근에 있었던 추미애 의원을 둘러싼 스캔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정 받는 유능한 국회의원 추미애가 취중에 몇마디 상소리(‘곧은 소리’에 가까운)를 했단 이유로 물어뜯기고 할큄을 당했던 사건을 상기하라. 회기 때마다 TV를 짜증으로 물들이던 멱살잡이, 욕지거리꾼(주로 남성)들이 그러한 일로 언론의 밥이 되어버린 일이 있었던가?(있다고 해도 그건 의례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기는 일이 대부분)

사태가 이 지경이니 이 책을 읽으며 분노를 피할 도리가 없다. 나는 씩씩대다가 혀를 차기도 하고 짜릿한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며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렸다. 막연히 ‘이게 대체 뭐야?’라며 짜증만 내던 문제들이 여러 각도에서 조명이 되니 보다 선명해졌다. 한국사회의 야만적인 마초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려는 시점에서 이 책이 그 맥을 적절히 짚어주었다고 생각한다.

p. s.
박남철, 반경환 여성 시인 모독 사건을 다룬 몇 편의 글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논자마다 이 사건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노혜경, 이명원, 강준만 이 세 사람 중에서 문제의 핵심을 ‘성차별’과 ‘성폭력’에 둔 것은 노혜경 시인 밖에 없었다. 강준만은 이 사건을 ‘진보 상업주의’의 결과로(진보를 가장한 창작과비평사에 대한 비판), 이명원은 ‘문인 신비주의’의 결과로(문학을 하는 예술가는 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방종에 허용되는 분위기를 비판),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난 이 사건이 창작과비평사가 아닌 다른 진보적인 단체 혹은 지식인 그룹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문인을 굳이 신비하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런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친구 빈센트 - 행복한 책꽂이 03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의 삶을 그것도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비록 책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어도 말이다. 그건 마치 누군가의 비밀얘기를 다 듣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처럼, 내 얘기를 꺼내놓게 만든다. 나도 내가 살아온 만큼을 고스란히 돌아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비슷한 그러나 뜨겁게 살아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지금 왜 빈센트인가?
빈센트 반 고흐는 언제나 '반 고흐'가 아니라 '빈센트'라고 서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빈센트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로부터 이해 받고 사랑 받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있다. 늘 세상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자 했으나 번번이 실연 당했고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 버림받았던 빈센트. 그는 상실된 인간들 사이의 내면적인 교류를 꿈꾸었다가 좌절했고, 그럴수록 더욱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단절, 진실한 내면적 교류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인간관계로 인해 끊임없이 상처받으면서도 결국에 돌아가야 할 곳은 그 관계 속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굳이 빈센트를 부르고 싶다. 엉켜 사는 이유로 담쟁이덩굴을 제일 사랑한 화가 빈센트를 말이다.

그저 인간이자 화가였던 빈센트를 알게 되다.
많은 사람들이 빈센트를 '광기의 천재' 라는 말로 혹은 그런 이미지로 기억할 것이다. 그저 위대할 따름인 먼 예술가. 그러나 최근의 고흐 연구는 지금까지의 논의들과는 다르게 그를 철저히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이자 화가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언제나 모자랐고 약했으며 슬펐다고 한다. 오히려 아무런 노력도 없이 타고난 약간의 손재주와 감각으로 예술가연하고자 미친 체 하는 사람들은 강한 사람이었고, 단 한 번도 가짜로 미친 체 한 적이 없는 빈센트가 결국 진짜로 미쳐버린 것처럼 보인 것은 그가 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빈센트는 이제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식인으로서의 빈센트에 공감하다.
아직은 낯선 말이다. 지식인으로서의 빈센트.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진정한 지식인의 삶을 구체화시킨 사람이었다. 그는 탄광 지역 노동자들의 부르주아에 대한 저항을 1백년 전 제3계급이 다른 두 계급에 저항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고 했다. 그는 당대를 가장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부르주아 계급으로 편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항상 자신을 더욱 누추한 공간으로 이끌곤 했다.

누군가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고 했는데, 빈센트의 삶을 보며 그 '성실한 가슴'을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는 빈센트를 위대한 화가로서만이 아니라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산 지식인으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의 삶이 주는 감동
왜 빈센트의 그림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가? 그는 처음부터 보통 사람을 주제로, 보통 사람을 위하여, 보통 사람의 눈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고 평생 그 서약을 지켰기 때문이다. 빈센트의 삶과 예술의 핵심인 자유정신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와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왜 자유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빈센트의 그림과 함께 이러한 생각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에 대한 막연했던 감동은 채찍이 되고 희망이 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산 시대를 철저히 고뇌한 사상가 또는 지성으로서의 빈센트를 기반으로 그의 삶이나 그림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 빈센트와 나 사이에는 100년이 넘는 시간의 거리만큼이나 먼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너무 먼 곳에 있었던 빈센트를 내 곁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항상 시대와 사람에 깨어있게 할 친구로서 그를 내 삶에 초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