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어지면서 극히 완만하게 서사의 기울기가 생겨난다. 언어는 자잘한 우회로와 나선원을그리며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닮아가고 그렇게 최대한현세의 재보로부터 자신을 지켜냄으로써 멈춰 서 있다.  - P25

시커멓게 다 타버린 채 우주를 황망히 돌고 있는 지구의폐허를 은하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보다 더 생소한 시선은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가정의 벗의 이야기에서 울려퍼지는 유년 시절은 어제보다 더먼 과거는 아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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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문인들의 끔찍스러운 끈기다. 글쓰기라는 악덕은 너무나고약해서 어떤 약도 듣지 않는다. 이 악덕에 빠진 자들은 글쓰기의 즐거움이 사라진 지 오래여도, 심지어 켈러가 말했듯 나날이 바보천치로 떨어질 위험이 있는 중년의 위기가찾아와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만큼 절박한 바람이 없는 때에도 그 악덕을계속해서 실천한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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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 P223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 P224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 - 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살던 사람이니까."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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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의견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종종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뒤바뀐다.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림자가 빛이 되고, 빛이 그림자가 된다. 양이 음이 되고, 음이 양이 된다. 그런 작용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본질인지 혹은 그저 시각적 착각인지는 내가 판단하기 버거운 문제다.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F*는 그야말로 빛의 트릭스터였다.
고 할 수 있으리라.
- P154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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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 가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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