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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드라마 속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 결과를 알기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드라마 속의 회상장면은 그 안타까움을 시청자에게 더욱 강인시켜준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드라마에 빠져든다. 이 책은 그런 흡인력이 있다. 회상장면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책을 덮기 전까지 한 장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서 쉽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예니 에르펜베크’ 독일작가의 평범하지 않은 구성도 평범하지 않은 문체도 생소하게 느껴져 읽기가 다소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무시하면서 읽을 정도로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정원사, 건축가, 섬유 업자, 소녀, 작가, 손님, 세입자 등 등장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그 풍경과 함께 활기찬 일상들을 보여준다. 마치, 메르키슈 호숫가의 그 장소를 예전에 본 적 있듯이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호수에 대한 기억이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이 분명했지만,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 장소를 맞춰가는 즐거움에 그런 생각은 그냥 다시 기억 속에 잠재우기로 한다. 드라마 속의 ‘몇 년 후’라는 자막 다음에 보여주는 에피소드처럼, 충분히 행복한 시간들이 눈물 날 정도로 안타까운 것은 다시 재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억울하고,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상이었기에 피해갈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집을 떠나야만 했던 순간, 잠시 시간이 정지하고 관찰자시점의 상황묘사가 그 상황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사람들에게 최악의 역사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파괴해버렸기에 그들의 단조롭고 평온했던 시간들은 더욱 소중하게 기억된다. 이 소설은 분명, 한 번 가볍게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한 장소에서 누군가의 삶이 이미 그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고전적인 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저 그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당황스럽고,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역사적 사명의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러 번 읽으면서 우리들의 인생도 역사의 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