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 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될 그런 사람. 설사 둘이 어찌어찌한 일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든, 서로에게 권태로워져 이별을 하든, 마음이 바뀌어서 이별을 하든, 그럴 때 정말 잘 헤어져 줄 사람인지 말이야.

- p. 13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을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라도 그들과 함께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들이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고독뿐입니다.
- p. 21~22


  미국에서 대통령은 4년간 집권하고 언론은 영원히 통치한다.
  민주주의(democracy)란 단지 인민을 위하여, 인민에 의해서, 인민을 커다란 몽둥이로 두드리는 것을 뜻할 뿐인 것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자신을 기만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타인을 기만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로맨스라는 것이다.
  연애 감정이란 서로가 상대방을 오해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올바른 결혼의 기초는 상호의 오해에 있다.
  유행이란 하나의 추악함의 형태이며, 대단히 사람을 피곤하게 하므로 석 달에 한 번은 바꿀 필요가 있다.
  의무란 사람들이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인생은 모두 다음 두 가지로 성립된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
  인생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것이 아니다.
- p. 75~76


  오늘 아침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모욕에 오늘 하루를 내줄 것인가, 생명이 약동하는 이 오월의 아름다움에 네 마음을 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너 자신이지. 그것은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너의 선택이라는 거야.
- p. 110


  참 이상하지 위녕, 이상하게 똑같은 일 년인데 어떤 특별한 날이 있다. 일 년에 하루뿐인 어떤 날. 엄마는 며칠 전 그날을 느꼈단다. 너는 어땠니? 으음, 말하자면 여름이 가을에게 한 갈피 자리를 내주는 날, 무성하게 피었던 벚꽃들이 바람도 없는데 일제히 떨어져 내리는 그날, 어렵게라도 나무에 붙어 있던 마른 이파리들이 갑자기 일제히 손을 놓고 거리를 뒤덮는 날 그리고 엄마가 이야기하는 며칠 전 같은 날. 말하자면 습하고 무더웠던 공기 속으로 마르고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스며드는 날. 그날은 실은 일 년에 단 하루뿐이라는 걸 너는 아니? 엄마는 며칠 전 어느 깊은 밤, 길거리에 서서 이 바람을 느꼈다. 마침 어디선가 귀뚜라미가 울고 있더구나.
- p. 172~173


  위녕, 언젠가 어두운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 있다고 느껴질 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너의 어린 시절의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네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가 아니라면, 신 혹은 우주 혹은 절대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 p. 255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책은 공지영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형식으로 그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삶의 메시지들을 담았다. 딸의 엄마로서 잔소리나 충고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동시에 '책' 이야기를 한다. 편지마다 소개되는 책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아마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얀 이야기-얀과 카와카마스'는 꼭 읽어보고 싶다.) 

  살아낸다는 것, 인생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뿐. 그럼에도 힘이 되어주는, 아니 힘내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펼쳐진 오르막은 걸어볼 만한 평지로 느껴진다. 막연한 미지는 아닌 것이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수많은 순간들. 아직 해 볼 만한 것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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