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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그렇게 뜯어먹는 사이에 무언가 손에 미끈거리는 게 묻었다. 손가락을 빨아보니 땅콩 맛이 났다. 둥근 대보름빵의 4분의 1 깊이나 먹었을
때 비로소 땅콩버터 크림이 처음 나온 것이었다. 최소 비용과 최대 효율 같은 경제 원칙이라곤 전혀 모를 나이였지만, 나는 크림이 이제야 나온
것이 매우 부당한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 p. 105
사람의 감정이 한 덩어리의 밀가루 반죽과 같다면. 나는 아직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설마라도 나타나면, 한
덩어리의 감정을 최대한 가늘고 길게 뽑을 거다. 솜씨 좋은 장인이 뽑아낸 면발만큼이나 가늘고 길게. 굵고 짧게 토막 나는 감정이라면 분노만으로도
충분해.
-p . 131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요새는 실망한 적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이번에도.
뭐가 별로였는지 따져볼까. 가장 먼저 주인공. 초반에 잠깐 읽다가 내려놓고 다시 집어들었을 때 주인공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조차
헷갈렸다. 작가가 고등학생 정도 되는 남자아이의 심리를 이렇게 모를까. 두 번째로 애정이 가지 않는 인물들. 새엄마, 아빠, 가족 모두, 아니
판타지적인 인물인 마법사와 파랑새 빼고는 죄다 나쁜 놈이다. 그럴싸한 마법사도 나쁜 놈들만큼이나 일차원적이라서 와 닿지 않는다. 마지막, 읽고
난 뒤에 드는 의문들. 이게 성장소설? 아니면 동화? 누구를 대상으로 한 소설? 애매하다.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좀. 주인공은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동화라고 하기엔 글쎄. 무엇보다 이 소설은 근사하지 않으니.
글의 호흡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건 일회용의 비유를 자주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럴듯한 비유를 쓴다고 해서 글이 꼭 멋있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덕분에 다시 깨달았다. 재미있을 법한 소재를 잡아놓고도 이도 저도 아니게 한 것도 그다지 고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좀 더 오밀조밀하고 매혹적이고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처럼 기대를 충족시켜 줄 소설을 기대했는데.
책이 많이 팔리는 것과 그 책의 가치 정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보면 된다. 또 한 번 얻은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