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불편함이 아니다. 자식에게서 받는 소외감이나 배신감도 아니다. 이제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나면, 인생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몰라서 고생을 견디고, 몰라서 사랑을 하고, 몰라서 자식에 연연하고,
몰라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누런 강 배 한 척>
밥 줘.
여태 식사도 안하고 뭐 했어요?
뭐 ― 했 ― 어 ― 요? 이상하리만치 그 한마디에 위며 내장이며 그런 것들이 활활 불타는 느낌이었다. 이상한 놈들이 여럿 내 배 속에
들어와 심장이며 허파며 되는대로 라이터를 갖다대며 불붙어? 붙었어? 잘 안 붙는데. 붙잖아, 에이 가죽 아니네~ 야지를 놓는 기분! 안전모를 쓴
웬 또라이가 내 귓속에 드라이버를 박고 한 십분을 돌려대다 어이, 십자가 아닌가봐. 일자 좀 줘봐~ 외치는 소릴 듣는 기분! 그래서 달려온
동료란 놈이 날도 더운데 그냥 부수지? 눈 앞에서 해머를 건네주는 딱 그 기분! 누가 봐도 이건 정당방위야, 그래서 별수없이 변신 ―
파이어!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초저녁잠을 놓친 기분이 흡사 출근버스를 놓친 기분이다. 출근이라... 출근의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불과 십여년이 지났을 뿐인데,
달아난 저녁잠처럼 세월도 그렇게 지나간다. 이제 어떤 버스도 오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영원한 퇴근이다.
오십년의 세상 살이가 그녀를 잊게 했지만, 풀이 무성한 기억의 저변에는 그녀라는 운석이 단단한 결정(結晶)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오이냉국을 떠먹고 있다. 그리고 시금치를, 계란찜과 두부를... 고등어를 먹고 있다. 인생의 같은 방향에서, 같은
집에서... 우리는 다시 조우했다. 인생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낮잠>
강과 벌판을, 그리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 숨을 고르며 내려선 곳은 제주 서귀포의 어느 바다 위였다. 쪼그려 앉은 채, 천마는 그곳에서
생선회를 뜨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하고 해맑은 얼굴로 천마가 미소를 지었다. 비봉폭포에서 멱을 감고 오느라 두 마리밖에 잡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다금바리라고... 뜨거운 눈물이 인선의 뺨을 타고 흘렀다. 곡주와 내미는 회 한 점을 거절하고 타케마루 한조는 발길을 뒤돌렸다. 옆구리
살을 몽땅 베인 생선처럼, 제주의 해풍이 시리고 서러웠다. 끼릭, 하고 텐진이 구슬픈 울음을 울었다.
龍龍
龍龍
입대하기 전에 이런 일을 꼭 해보자 ― 의논 끝에 결정된 것은 먼저 <아보가드로 습격>이었다. 아보가드로는 고등학교 때의
선생인데, 일단 죽이고 법원에서 이유를 설명하면 ― 판사에 따라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죽일 놈이었다. 왜 아보가드로인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선배들이 그렇게 불렀으므로, 우리도 아보가드로를 아보가드로라고 불렀다. 패자. 결론은 만장일치였다.
<비치보이스>
박민규, <더블>
우선 드는 생각은 '역시나'
그는 '습관처럼 글을 쓰겠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얼렁뚱땅의 서사와 고른 리듬의 문체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소재는 그의 말대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채널쯤 되겠구나. 스타일과 읽는 재미 면에서 독보적이다. 적절히 현실감각을 입은 독특한 글이 일품이다.
박민규는 글을 쓰는 동력이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듯하다. 그 아이디어에 들어가는 현실의 배합이 적절히 맞으면 기가 막히는 요리가
나오고 아니면 싱겁거나 요상한 퓨전 요리도 종종 나오는 것 같다. 욕심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엉덩이를 너무 앞으로 뺀 채 편하게 쓴
글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만 '젖을...좀 짜줄까?' 같은 이상한 건 안 넣으면 좋겠다. 색다르긴 한데 그것도 필수인가?)
앞으로도 계속 기대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와 소재의 다양성은 내게도 강한 자극이 된다. 심지어 그가 가진 엔진이 부럽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