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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 아무리 집요해도 그것이 스러진 뒤에는 그 자리에 오는 다른 사랑에 의해 완전히 배척당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배타적인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랑, 새로운 사랑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붙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나는 그것은
광진테라 아저씨 박광진씨를 통해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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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이모가 안쓰러운 거였다. 갈상머리 없고 덤벙대는 막내 딸이 속을 끓이며 아파하니 그것이 더 할머니 마음에 와 닿는 모양이었다.
성숙한 어른이 슬퍼하는 것보다는 철없는 아이의 슬픔은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므로 철없는 사람은 마음껏 철없이 행동하면서도 슬픔에 닥치면
불공평하게도 더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으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같은 배려를 받지 못한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손해이다. 나는 너무 일찍 성숙했고 그러기에 일찍부터 삶을 알게 된 만큼 삶에서 빨리 밑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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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떤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이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은희경, <새의 선물>
'이 작가는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구상 단계부터 찡그리고 있을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야기
전개부터 인물 묘사 하나하나까지 전부 퍼즐 조각으로 만들어 배열해뒀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를 빼내도 어색할 것이고 새로운 하나를 넣으려
해도 공간이 없다. 치밀하게 뼈대를 세우고 빈틈없이 기왓장을 올린 집을 내놓은 듯하다. 문장 간 이음이 촘촘해서 문단은 무겁다.
우연과 복선을 적절히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주인공의 시니컬한 시선으로 인물을 훑고 지나는 묘사가
대단하다. 일상의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 같다. 익숙한 풍경과 그럴듯한 이야기와 있음직한 인물이 문장에 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다. 소설을 덮었을
때 작가가 떨어트려주는 선물이란 바로 그런 문장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