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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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게 몸이 있단 사실을 깨닫는 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혓바늘이 돋은 순간만큼 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때도 없는 것처럼, 각 기관들을 아주 세부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의식하며 살아야 했다. …… 나는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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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그땐 그냥 짐작이었지. 나이란 건 말이다, 진짜 한번 제대로 먹어봐야 느껴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거 같아. 내 나이쯤 살다보면…… 음, 세월이 내 몸에서 기름기 쪽 빼가고 겨우 한줌, 진짜 요만큼, 깨달음이라는 걸 주는데 말이다, 그게 또 대단한 게 아니에요. 가만 봄 내가 이미 한번 들어봤거나 익히 알던 말들이고,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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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누군가 자신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단 사실만으로 자신이 귀한 사람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비밀과 거짓말, 유혹과 딴청, 진담 혹은 우스갯소리가 얼마간 이어지던 시기. 작게 웃고, 공감하고, 귀 기울이던 나날. 하지만 연인들이 차려놓은 대화의 식탁에 꼭 밀담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거기에는 오히려 둘만의 밀어를 보호하기 위한, 무수한 딴 얘기와 시치미가 필요했다. 시시껄렁한 얘기도 좋고, 범박한 소재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말들을 통해 두 사람이 뭔가 축조해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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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천진한 표정으로 내숭을 떨며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저 동공 좀 봐……'
  도발을 모르는 도발. 혹은 도발을 약간 아는 도발. 활짝 열린 어머니의 동공 속엔 분명 그런 것이 있었다.……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조로증을 앓는 열일곱 소년과 그 나이 즈음에 그 소년을 가졌던 부모의 이야기이다.
 
  내겐 열일곱 소년의 사건들보단 중간중간 나오는 부모의 오래전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오랜 앨범 속 사진처럼 알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듯한 느낌이. 여태 무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늙어버린 우리 부모님에게도 똑같은 같은 청춘이 있었다는 것을. 

  소설 속 문장은 해풍에 오래 말린 생선처럼 간결했다. 글을 쉽고 재치있게 잘 쓴다. 남자 주인공에 김애란이 더러 묻어나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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