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마지막 장에서 손을 떼며 그대로 묻어나오는 첫 느낌은, 무겁지 않은 문체와 많은 대화들에서 불어오는 생동감과 한 인간의 처지에서 교차되는 혼돈을 슬프도록 탐미적으로 그렸다는 점이었다.

자기의 큰 키에 맞게 살고 싶어하고, 어른들 속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하며, 성숙한 성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열여섯살의 홀든은 자아인식의 위기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사춘기의 한 소년이다. 또 그는 건조하고 각박하며 복잡한 이 현대사회 속에서 그른것은 그르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예언자적 용기를 갖고 있다. 부도덕과 부조리로 무섭게 일그러진 어른들의 세상을 배회하며 홀든이 찾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나 어른들이 자기라는 한 개인에게 줄 수 있는 따뜻한 이해와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홀든이 정작 발견하는 이 세상은 어떤 운동경기와 같아서 항상 그 안의 고정된 규칙을 따라야 하며(19), 또 그 경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순수함>같이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어떤 궁극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도, 규칙을 거스르는한 인생이라는 경기안에서는 어떠한 보호도 받을수 없다는 절망뿐이었다. 이러한 통제와 억압이 일상화된 우리의 사회를 직시하며 샐린저는 자율성과 창의성만이 홀든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원천이라고 말하며, 순수함만 존재하는 호밀밭에서 한 <파수꾼>으로 살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자로 몰아버리는 이 세상에 자포자기의 한숨을 토해낸다.

샐린저는 작품주제 자체에 못지 않게, 주제의 전달방법에까지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는 듯 하다. 책 전반에 걸친 어떤 감동의 의도성이 드러나지 않는 홀든의 자연스러운 내적울림이나, 그의 상처와 고통을 무의식적 유머로 가끔 뒤집어 놓는 고도의 수사법, 십대 청소년들이 즐겨 사용하는 속어와 비어들의 갑작스런 돌출, 그리고 이 속어와 비어들에서 배어 나오는 삭막함과 거침속에서 어떠한 훈훈함을 잃지 않으려는 샐린저의 노력등이 시종일관한다.

특히 속어나 비어들을 총집합해 놓은듯한 느낌까지 주는 이 작품은 마치 유행가 가사나 코미디의 유행어처럼 속어나 비어들이 줄 수 있는 그 시대만의 유행하던 정심을 잘 투영시켜 주는 듯하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의 거울이며 의사소통의 도구이라는 점을 볼때 더욱 그럴 것이다. 이렇게 작품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는 샐린저만의 표현기법은 사람살이의 이야기성에 대한 그만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흘러 나온다.

어디선가 읽은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샐린저는 이 책을 통해 스피드와 경쟁이 팽배한 이 사회를 살아가며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있는 그 외로움을 대변해 주는것 같다. 또, 우리를 항상 억누르고 있는 가식과 이기의 외투를 하나씩 벗고 그늘진 삶을 한번씩 바라보라고 말해 주는것 같다. 삶의 의미와 빛을 던져주는 일은 어디서 오는가...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강퍅하고, 피곤하며 삭막한 이 도회의 어디선가 홀든이 외치는 진실의 소리가 끊임없이 파도쳐 오는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조물주를 동경하는 구체적인 방법일까. 인간에게는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해 내고 싶어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것 같다. 노래를 작곡하고, 조각을 하며 영화를 찍고, 글을 쓴다. 동시에 그런 행위들은 다른이들에게 기쁨과 분노, 우울함과 절망같은 수 많은 감정들을 운반한다. 이런 창조라는 능동적인 기술과 노력이 예술이라는 불꽃으로 다른이들에게 다가갈때, 우리의 삶은 단순한 흑암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인간의 무한한 미에 대한 갈구와 의문을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그만의 격조 높은 시적언어와 빼어난 감수성으로 우리 앞에 고스란히 되살린다. 그가 보는 현실공간에서는 귀로 듣는 것마다, 코로 맡는 것마다, 손으로 잡는 것마다, 토해내는 숨결마다 시가 되는 듯하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조이스의 유년기에서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는 종교적, 지적, 예술적 고뇌와 마찰들을 자서전적 또 연대기적으로 기록하며, 조이스 특유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통해 그가 어떻게 그 마찰이라는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아 빠져나오는가 하는 과정을 그린다. 어릴때 부터 자아의식이 남달리 강해 보이는 조이스는 당시 아일랜드 청년 모두가 겪는 정치적, 종교적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기 보단, 단순히 그 옆에 조용히 표류하는 하나의 배로 남고 싶어한다. 이러한 조이스의 자기격리의 용기는 자기의 정신의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삶과 예술의 양식에 대한 목마름과(378), 권위와 존경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라는 한 상징에 대해 거짓된 경의를 표하기 싫은 진실된 자의의 숭배에서 비롯 되었다 할 수 있다(374).

책의 말미에 조이스는 <침묵, 유배, 간계>라는 확신의 단어들로 앞으로 펼쳐질 그의 구체적 탈피행로를 설명하며, 그러한 그의 선택은 순간적이거나 표면적이 아닌,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친 겸허하면서 꾸준한 자기성찰에서 빚어진 <자유>라는 완성된 조이스 그만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다분히 몽환적이기 까지한 이 한 <예술가>의 앞날을 보며 한 점의 윤곽조차 찾기 힘들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삶의 목표를 추구하려는 그의 선택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미소 짓고 싶다. 또 가식적인 미, 특히 성형수술같은 육체의 미에 대한 관심이 전대미문으로 최고조에 이른 이 시대, 그럴수록 정신이나 영혼은 약화되고 황폐해지고 있는 이 시대, 어떤 고통과 인내의 터널을 통과했다기 보다는 단순한 재미와 흥행을 위한 가벼운 시도들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쏟아지는 이 시대에, 조이스는 <예술가의 길>에는 그렇게 통과하기 쉬운 <넓은 문>만 있지는 않다고 우리에게 얘기해주는것 같다.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당신에게 나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 말 독일의 철학자 니체(F. Nietzsche)는 ‘신은 죽었다’는 한 마디의 말로 너무나 쉽게 유럽역사 이천년을 이끌어온 기독교 사상의 뿌리를 밤손님처럼 들어와 마구잡고 뒤 흔들어 놓는다. 이렇게 새로 다져진 현대사상의 토양 위에‘실존(實存)철학’의 나무가 카뮈(A. Camus)와 사르트르(J.P. Sartre)에 의해 심어진다. 특히 카뮈는 존재에 대한 풀 수 없는 의문과 삶의 혼돈, 그리고 저 죽음 너머의 세계, 이 같은 20세기 인간현존(人間現存)의 의미를, 부조리(absurdity)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이 부조리는 단순히 우리네 사회의 부도덕성이나 비합리성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왜 사는가’라는 우리존재의 의미를 묻는 카뮈의 고통스러운 성찰과 직시의 과정으로부터 솟아나온 ‘무의미(無意味)’라는 삶의 정의(定義)로 봐야 할 것이다.

그의 대표작 <이방인>은 뫼르소(Merusault)라는 현실에의 무감각한 우리 인간상에 대한 연구이면서, 삶의 부조리, 그 무상성(無常性)을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뫼르소, 그의 일생을 뒤집는 운명적인 행동이, 그의 이름(‘Mer’ 바다 와 ‘Soliel’ 태양) 자체에서 상징되듯이 뫼르소가 현실에서 느끼는 무감각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대서 빚어진 무감각이며, 카뮈가 그리는 뫼르소는 우리와 전혀 다른 어떤 특정한 개인을 그리기 보다는, 삶의 무게에 짖눌려 삶의 의미를 망각한 체 살아가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처형 대에 올려지는, 죽음을 직면한, 그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깨닫는, 우리의 그 ‘무감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카뮈의 믿음이 또한 이 책 속에 남아 있다 하겠다.

뫼르소의 마지막 절규하는 신부와의 대화는 카뮈의 신에 대한 무감각적 태도를, 그의 실존주의 프리즘을 통해 직접 보여준 것으로,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다면, 카뮈는 ‘신? 괜찮습니다 당신없이 혼자 할 수 있습니다’의 태도를 보였다 할 수 있다. 신에게 영광 돌리는 삶이 죽음너머의 사후세계의 구원과, 이 땅의 진정한 삶의 목표인 기독교인들의 사상에 이 ‘의심하기’는 용납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파괴와 죽음에 너무나 친근한 사람들중 하나로서, ‘생존’만으로도 삶의 의미가 부여되는 그 당시에 사람들중 하나로서, 카뮈에게 ‘우리는 도대체 왜 이상에 왔는가’는 진정한 미지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