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 빈방의 빛 > : 시인이 말하는 호퍼

- 마크 스트랜드 /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학창시절, 미술 시간이 대체로 괴로웠다.
밑그림이나 묘사를 해놓으면 선생님의 눈이 한순간 반짝거리다가 색만 입히면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지나가셨다.
창의력은 있으나 손만 대면 빛을 잃는 능력이 있었달까.
그래서 미술은 언제나 음악에게 밀려났고 어렵고 불편한 존재였다.
몇년 전부터 미술과 연관된 책을 하나씩 만난다.
미술과 시가 버무러진다거나 미술과 역사가 혹은 작가와 작품이 어우러지고 소개되는 책들을 하나씩 읽으며 서서히 젖어들고 있다.
호퍼도 그 중의 한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미술가다.
그의 대표작인 '나이트호크' 등을 위시해서 대부분의 작품엔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 책에는 32점의 그림이 소개되는데 이렇게 많은 호퍼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 하겠다.
그림에 관해 무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더 망설여지지만, 내가 느낀 것은 '적막'이었다.
사물들은 곡선이 아닌 평행선들로 이루어지거나 배치되어 있고 사람들의 표정은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배제되어 있다.
여럿이 어우러지는 나무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숲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 개개의 다양성이나 고유함은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일면 깔끔해보이고 정갈해보이지만 보는 사람을 조금 멀리 떨어지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요동도 없지만 열정도 고갈된 적막한 현대인들을 반영하는 듯한.
저자도 '부재(absence)'를 고통스러워하고 노래했다는 점에서 둘은 이미 공통점을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저자의 눈에 호퍼의 그림들이 잘 보이고 할 말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시선으로 그림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맛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시각화된 세계를 언어로 전달해준다는 것은 각기 다른 영역의 문으로 들어가 하나의 존재를 만나고 거기에서 통합 혹은 개별성의 존재를 재창조해서 나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호퍼의 작품과 더불어 저자의 세계도 같이 누릴 수 있어 더 즐거웠던 책.
'빈방'과 '빛'이 다른 듯 오묘하게 잘 어울리는 느낌이 잘 실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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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만나는시인의세계
#시인의입을통해다시그려지는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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