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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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든 이별 >

- 류근 / 문학과지성사 -

난 사실 시집은 느낀점을 잘 쓰지 않는다.
행과 행 사이의 침묵이 좋아서 시를 좋아하고
글자와 글자를 덜어낸 여백이 좋아 시집을 좋아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어떤 느낌으로 읽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수록 노는 다른 쪽으로 저어지기 때문에 진작부터 그런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느낀점을 남기는 것은 그가 얼마전부터 내 페친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라면 미리 뒷걸음질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친구는 하지 않고 아주 오래 전에 받아보기를 하며 즐겨 읽은 적은 있다.
그리고 단편적인 시 몇 편, 김광석의 노래 가사가 그의 것이라거나 상처적 체질 같은 유명한 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글에 감동 받아 "페친도 아니면서..."로 시작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하곤 바로 친구를 신청해주었다.
"지금부터 친구 하면 되지요."라는 답글과 함께.
나는 그를 모르고 그는 나를 모르지만, 자신의 담벼락에 오는 이들을 순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오며가며 서로의 글을 볼 때마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친구가 되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는 시를 읽을 때엔 뜸을 좀 들인다.
특히나 시 한 편이 아닌 시집을 읽을 때엔 국수를 말아먹듯 그리 급하게 읽고 싶지 않다.
머리를 채우는 책이 있고 가슴을 데우는 책이 있다.
시집은 바람을 만나는 책인 것 같다.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것들을 버리는 날들을 구경하는 작업이다.
만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고, 그 기다림이 나를 잡아 이끌 때 천천히 다가간다.
그렇게 만나는 시들은 나를 시인만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의 시집에서 만나는 이들은 생각보다 더 다양했다.
그이기도 했다가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탄생된 부산물이기도 했다가 존재 자체가 옅어지고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난 그 희미해지는 존재들이 더 좋았다.
무언가로 명명되지 않고 이름조차 붙여줄 수 없는 수많은 개념과 사람들이 막 떠다니는 게 좋았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나 시인이라면 으레 있을 것 같은 염세적인 옷들만이 아니더라도
그의 시는 어느 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쏟아지는 영화를 보듯 새로운 사람들을 쏟아낸다.
때로는 진짜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어느 때엔 그가 아닐까 상상하게 되는 모습들을, 그리고 문학작품 속에서 살았던 어떤 배역이나 그것을 만들어낸 작가들을.
역시 시는 시집을 통틀어서 먹어봐야 그 사람을 더 알아가는 것 같다.
빛나는 눈빛으로 조심스럽고도 찬찬히 그리고 빠르게 세상을 스캔하며 다니는 것 같은 시집.
그러면서도 다니는 곳마다 아름다운 눈물을 묻혀 놓아 결국 그의 사랑을 같이 찾아주고 싶어지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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