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글쓰기 프로젝트
(사)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 지음 / 삼인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 >

                     -(사)성매매피해여성센터 살림 엮음 / 삼인

 

 

 

오래도록 읽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은 주로 내용이 내게 벅차거나 몰입하기 어려워 쉽게 읽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내용도 쉬운데 오래 붙들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걸어온 삶이 힘겨운 이들의 이야기일 때 그렇습니다.
이 책도 그랬지요.
내용은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성매매 피해자들이 그 자리를 뛰쳐 나와 새로운 삶을 꿈꾸도록 돕는 단체인 "살림"에서 그들을 위한 글쓰기 치유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그 과정이 담겨 있고, 그들의 힘겨웠던 싸움이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기록이라 할 때엔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나의 상상이나 생각을 펼쳐 놓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일어났던 실제의 일들을 기억하고 다시 떠올려 적는 작업은 그 때에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다시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마주 보고 그 고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극복이 되는 과정, 그것이 치유라는 이름의 진정한 모습이라면, 우리 곁에 쉽게 다가오는 치유란 얼마나 말랑한 부분만 내어놓는 일인가, 다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됩니다.

 

 

 

이 책은 '성매매'라는 말부터 우리의 눈을 불편하게 합니다.
성이라는 매개체를 단지 사고 파는 일로 전락하는 일이며 그곳에는 사랑이란 이름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선 성을 기쁨으로 누리지 매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사는 자나 파는 자나 성이라는 것을 단지 유흥으로만 생각할 뿐 진지하고 고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거기에 '피해자'라는 단어가 다시 붙습니다.
피해자라면 가해자가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어느 한 면, 그러니까 성을 돈으로 사서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던 이들만을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불우했으며, 그들의 선택은 살기 위한 본능으로 어쩔 수 없이 걸어야만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들을 다 합리화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도 압니다.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을 더 사랑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자신에게 그런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본인들도 몰랐던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누구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는가 묻는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들처럼 쉽사리 선택하기를 바라지 않는 청소년들이나, 왜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고 때렸는지 원망도 많이 했던 부모들이거나,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만 치부하는 업주들이거나, 그 자리에선 도저히 빠져나올 수도 없고 그리 나와도 이 세상에 적응해서 살 수 없을 것이라 미리 포기한 또 다른 동료들을 기억해 냅니다.
피해의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오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경찰도 한 패라고 생각한 그들에게 가서 지금껏 있었던 일을 다시 말해야 하고, 여태 동료라고 토닥이며 같이 살았던 이들과 대치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결국 그 일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하는 일임과 동시에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버려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에게도 오해의 날이 길었던 때가 있었지요.
그들은 잠깐의 편함을 위해 그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겠는가, 돈을 따라 갔든 욕망을 따라 갔든 그들이 자처한 길이 아니겠는가, 했던 생각이 컸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들에 대한 폄하의식이 당연하다고까지 여기기도 했지요.
그러나 온순하게 자라 온실 같은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내게 그들을 내 잣대로 평가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그들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나는 집을 뛰쳐 나가지 않았을까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없을 때 나이 어린 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얼마나 많을까요.
산부인과 의사임에도 일부러 가장 약한 그곳을 헤집어놓는, 내 돈을 냈으니 너는 지금부터 사람이 아니라 내 스트레스 해소용일 뿐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과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하루 종일 빚을 끄기 위해 일했는데 계산을 하면 본인도 모르는 빚들이 쟁여져 있을 때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너무 쉽게 너의 인생은 네가 선택했으니 네가 책임지라고 우리는 말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은밀하게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픈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원해서 소유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픔을 당한 이에게 당신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말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들을 자신을 방어하는 방향으로 합리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들을 자신이 다 떠 안고 걸어야 하는 것이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평범한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러나 그 평범함을 누리는 이들은 의외로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해 쉽사리 지나친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아픈 이들을 품을 수는 없어도, 그들의 아픔을 비난하는 일을 쉽사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그런 고백을 합니다.
 "그냥,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랬구나, 그랬겠구나' 하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다시 자신을 위해 새로운 꿈을 꾸고 일어나는 그 길은 쉬울까요.
더 많은 상처와 위축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딛을 때,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마음의 응원이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연은 다 다르겠지만 자유를 찾아, 아니 이미 자신 안에 있던 자유를 발견하는 그 걸음이 혹독한 세상의 시선에 지레 사그러들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책 제목이 너무 시립니다.
봄을 산다며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그들은 단지 겨울을 파는 것이라 한다네요.
그들의 꽃이라 여긴 것들은 실은 그들의 눈물인 것입니다.
그들도 자신만의 꽃을 아름답게 피울 수 있는, 따뜻한 봄날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 "한 번의 손 뻗음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한 번의 손 뻗음으로 사람의 인생이 바뀌니까 그걸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p125)

 

* "이제 깨달았다. 절박함이 사람마다 틀리고 헤쳐나가는 방법이 틀리다는 것을. 난 그 절박함을 기회로 여긴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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