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비움 - 노자를 벗하여 시골에 살다
장석주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 보면 다 읽기도 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주로 나와 많이 닮아서라거나 혹은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만난 신비로움을 담고 있어서일 경우가 많지요.
이 책은 장석주라는 이름이 우선 나를 끌었습니다.
올해 만난 책 중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고 부추긴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도 제 마음에 쏘옥 들었습니다.
생각도 실천도 늘 '느릿하게' 걸어서 때론 부끄럽고 민망스러워하는 나에게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닮고 싶어하는 단어인 '비움'도 함께 있으니 이 책은 그저 나를 비추는 거울 같겠구나, 도서관에서 빌려오며 지레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사실 도덕경은 한 번도 읽지 않았습니다.
한자만 써 있으면 시도도 하지 못할 영역입니다.
작은 글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앞장엔 도덕경의 구절들을 풀어주고 뒤에는 그에 해당하는 짧은 일상이나 생각들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내용이 다 실린 것도 아닙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일목요연하고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기보다는, 초승달을 쳐다보다가 담 너머에 있는 순이가 보고 싶어 막연하게 그녀의 집을 향해 걷는 것 같은 글도 많습니다.
글 자체가 비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처럼 대칭되고 반대되는 개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비움 속에 채움이 쟁여 있고 느림 속에 자신의 방향을 향해 묵묵히 걷는 발자국이 강물처럼 흘러 갑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저희 집도 이사를 했답니다.
거의 10년 만에 옮기게 된 이 일은 여러모로 저를 돌아보게 했지요.
외면적으로는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그보다 훨씬 작은 곳으로 옮겼다는 점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거기에 집주인이 깨끗하게 리모델링하고 현실적인 공간을 기획해서 수납도 많이 되는 이점도 있습니다.
식구들은 작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위해 애써서 정리하고 꾸미기에 바빴지요.
제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나이가 더 들어서 정착하는 집은 더 작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제 마음에 그려진 집은, 사랑하는 이와 부둥켜안고 잘 작은 방 하나와 여유가 된다면 언제든 재워줄 수 있는 손님방 하나, 그리고 폭이 30cm 남짓일 툇마루와 마당 구석에 사철 아름다운 벚나무 한 그루입니다.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다 가질 수 없지만 가슴에 품으며 도닥일 수는 있겠지요.
불어오는 바람이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흔들리는 가지와 떨어지는 꽃잎으로 그의 존재를 알듯, 마지막 길에서 나를 바라볼 때, 내가 머무는 나의 세상은 비록 작고 적었어도 은은한 사람의 향기는 내보낼 줄 아는 인생이었기를 기원도 해 봅니다.



도를 지나 덕으로 들어간다네요.
나를 많이 닮은 이 책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반절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그의 이 책은 새로운 세계라기보다는 익숙하고 더욱 더 닮아가고 싶은 내 세계로 깊이 깊이 들어가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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