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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척수성 소아마비 혈청을 개발하는 연구에 사용되는 원숭이는 혈청을 뽑기 위해 계속해서 척수에 구멍이 뚫린다. 과연 그 원숭이가 고통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의 제한된 지능으로는 인간의 세계, 즉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인 인간의 세계를 껴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세계가 우주진화의 종착점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의 세계를 넘어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제한된 지적 능력으로는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 빅토르 프랑클은 이 이야기를 통해 삶의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인 말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만들어낸 로고테라피(의미 치료)의 기본 원리는 아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p166 궁극적으로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선 안 되며, 질문을 받은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는 말이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됨으로써만 삶에 대답할 수 있을 뿐이며,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로고테라피는 책임을 지는 데에서 존재의 참된 본질을 찾는다.
즉 막연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지 말고 현재 개개인이 실현해야 할 구체적인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삶의 의미가 주어진 순간이나 각 개인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인데, 마치 체스 경기에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상대방 특유의 개성에 따라 가장 좋은 수가 달라지는 것과 비견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처해야했던 유대인 수용소에서는 어떤 삶의 의미가 있었을까? 인간적인 삶의 환경들이 누락되었고 개인의 의지가 말살 당했고 존엄성이 무시당해 가축과 같은 하루 하루를 살며 언제 죽을지 모를, 혹은 코 앞에 다가온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그곳에서? 빅토르 프랑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창조의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삶에 적어도 어떤 의미가 있다면, 고통에도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 고통은 운명이나 죽음처럼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고통과 죽음 없이는 인간의 삶은 완전할 수 없다. -P111
그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 고통을 껴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통에서 의미를 찾는 것만이 희망이 될 수 있었다. 그러지 못한 많은 이들이 버텨낼 정신력을 얻어낼 수 없었으며 우울과 낙심 속에서 지내야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한 저자가 살아남고,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죽게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평소 죽음(고통)이 두려워 어떤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함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런데 신은 운이랄까 기적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만든다는 걸 깨닫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저자는 1부 마지막문장을 이렇게 쓰고 있다.
p147 집에 돌아온 사람에게 있어서 모든 경험 중 최고의 경험은 모든 고통을 겪은 후에 이제는 하나님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치를 지키고자 하면 많은 경우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고 이러한 선택을 한 존엄한 분들이 나를 숙연하게 한다.
p24~25 대개 보면, 몇 년간 수용소를 이곳 저곳 끌려 다닌 끝에 생존을위한 싸움에서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남아있지않게 된 죄수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알게 모르게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당한 수단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심지어는 야만적인 폭력에, 도둑질에, 친구까지도 배신했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아니면 기적이라고나 할까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하여튼 살아서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