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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본 특유의 담백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흐르는 문학책을 읽었다.
그 책은 바로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다.
내 방 책꽂이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함께 꽂혀있던 이 책은 줄곧 책 읽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몇 년이고 방치된 채로 있었었는데,
우연히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마음>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스토리 자체가 스펙터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밋밋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음의 변화에 따른 긴장감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2명으로,
대학생 남자 주인공인 '나'와 해안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때 지식인으로 살았지만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외부세계와 단절한 채 죽은 듯이 살아가는 선생님은
사랑은 죄악이라 믿으며 자신을 포함한 세상 사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에 대해 원인 모를 매력을 느낀 나는 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자 하지만 선생님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잠시 고향에 내려가 있게 되는데, 그 사이 선생님은 자살을 해버린다.
오직 나에게만 비밀을 털어놓고 싶다는 장문의 유서를 남긴 채...
유서에는 자신이 어릴 적 작은 아버지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일과
지금의 부인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K군을 배신하였던 사건과,
외로움을 느낀 K군이 자살하였다는 내용,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은 지금껏 죄책감으로 인해 죽은 듯이 살아야 했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나는 이미 작고하신 선생님이 계신 도쿄로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은 채 장문의 유서를 통해 선생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죄책감으로 인한 마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자살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선생님,
그로 인해 홀로 남겨진 사모님,
그리고 존경하던 선생님을 갑작스레 잃은 주인공
이들 모두가 참 안타까워 마음이 아팠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죄를 짓고도 어느 정도는 죄책감을 잊고 살아갈 수 있는 법이건만,
선생님은 그런 일말의 죄책감의 망각도 허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도덕적이고 순수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어느 누구도 상대방이 표현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만약에 선생님이 마음의 문을 닫지 않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세상 사람들과 단절하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그 내용을 말로서 표현을 했더라면...
좋아하던 책을 멀리하지 말고, 더 가까이에 두고 무언가에 몰두하여 과거 일을 조금이나마 잊고 살 수 있었더라면...
그래도 그나마 죽음 직전에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은 참 다행이었다.
마음을 터놓고 떠날 수 있어서 그는 얼마나 홀가분했을까..?
짧은 소설 속 긴 여운을 남긴 이 책을 덮고 나자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과거에 내가 잘못한 일로 누군가는 평생의 상처로 기억될 일을 혹시 잊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편인가?
나는 이 세상에 내 마음을 털어놓을 진실된 친구가 단 한명이라도 있는가?
누군가 나에게 마음을 터놓고자 할 때 나는 귀 기울여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먼훗날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주게 될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한 때, 하루키님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도 그 작가에 대해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가
우연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고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그의 팬이 되었듯이,
나쓰메 소세키님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었는데,
이번에 <마음>을 읽고서 그때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 왠지 또 한 분의 나만의 완소 작가님♡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오른다.
향기에 반하는 것은 향기를 피워올린 그 순간뿐이고,
술맛에 감동하는 것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찰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충동에도 그와 같은 순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별다른 감정 없이 그 단계를 지나 상대에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친밀함은 느껴지지만
이성을 향한 촉각은 점점 마비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