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rine > 사람은 왜 인정받고 싶어 하나?

살림 문고, 작지만 강력한 모터, 뭐 이런 문구가 생각나는 책들이다 오래 전에 사 놨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책 살 때는 당장 안 사면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난리를 치다가도 막상 받고 나면 시들해지는 게 문제다 배송이 조금만 늦어져도 안절부절 못하고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난리치는데 왜 내 손에 쥐어지고 나면 시큰둥 하게 되는지... 이건 순전히 소유의 욕구 때문일까? 그래도 이렇게 사 놓은 책들은 언젠가는 읽게 된다 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시골 도서관에 신청한 책인데 아직도 구입이 안 됐다 올 1월에 신청했는데 여전히 신청중이라는 문구만 뜬다 1년에 한 번이나 구입하나? 광주만 돼도 한 달에 한 번씩 신간 구입해 주는데, 시골은 정말 너무 열악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샀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일단 제목부터가 사람 마음을 확 끌어 당기고, 내용도 정말 알차다 겨우 93페이지 밖에 안 되는 분량에 이렇게 알찬 내용을 담다니, 저자의 글솜씨가 놀랍다 살림 문고의 철학 시리즈는 수준이 꽤 된다 옛날에 읽었던 미셸 푸코나 샤르트르 등도 참 좋았는데, 이 책도 정말 마음에 든다 저자의 전공이 헤겔이라서 그런지, 헤겔 사상이 주를 이룬다 난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왜 철학이 삶에서 유리된 죽은 학문으로 치부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철학이야 말로 인간의 존재를 규명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길안내를 하는, 정말 실용적인 학문 아닐까? 지나치게 추상화 되고 형이상학적인 용어들 때문에 접근이 어려워서 그렇지, 이 책처럼 쉽게 설명한 책들을 읽어 보면, 철학이야 말로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도움을 받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의 문제, 이런 걸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남도 나에게서 이런 권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상호인정이 되야만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다 인정 욕구가 지나쳐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일방적으로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한다 왜냐면 대등한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뿌듯한 법이지, 노예에게 인정받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미학 오딧세이 후기에서 진중권이 하는 얘기가, 이 책이 대중에게 많이 팔린 것도 좋지만, 미학 전공자들에게 인정받은 것이 더욱 기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특수한 욕구에 주목한다 그런데 이 특수성들은 사회를 이루는 보편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야 의미가 있다 나의 욕구는 절대 나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표, 즉 보편성을 함께 지향해야 한다 이를테면 도덕이나 관습, 규범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특수성이 배제된 보편성은 의미가 없다 (국익을 위해 개인의 욕구를 희생해야 한다는 파시즘적 논리는 안 된다는 얘기)

인정 욕구에는 대등 욕구와 우월 욕구가 있다 내 욕구가 인정을 받으려면 상대의 욕구도 인정해 줘야 하고, 나와 동등한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진짜 기쁨을 느낀다는 점에서 상호 존중은 인정 욕구의 충족의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명예심과 자긍심이 남다른 사람은 대등한 가운데서도 도덕적으로, 혹은 능력 면에서 남보다 더 우월하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한다 이를테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고 느끼는 뿌듯한 감정 같은 거 말이다 이 우월의 욕구가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우월 욕구는 반드시 대등 욕구와 함께 가는 것이다 즉 상대도 나와 동등하다는 전제 아래, 명예심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더 우월한 감정을 갖는 것이지, 결코 상대를 나보다 낮은 존재로 보는 것은 아니다 우월 욕구가 변질되면 지배 욕구가 되고, 이것은 사회를 퇴보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같은 것들)

후쿠야마는 미국이 보편적 가치의 정점에 이른 국가라고 단언했다 이슬람 세계는 이 보편적 가치에 위배되는 문화이므로 특수성에 의해 존중받을 수 없고, 힘을 통해서라도 (즉 전쟁 같은 무력) 보편적 가치를 이식시켜야 한다 저자는 미국이 갖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우월 욕구가 지배 욕구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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