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제1,2,3부 - 전32권 세트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끝없는 전란과 혼란의 시기. 중앙집권이 이루어 지지 못한 채, 도처에 할거한 봉건영주들의 패권다툼이 100년 넘게 지속되었다. 어느 누구 하나 극명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싸움은 계속 된다. 그러던 중 전국시대를 끝낼만한 가능성이 등장한다. 오와리 지방의 작은 다이묘(영주)에서 시작하여 일본전토의 통일을 목전에 두게 된 오다 노부나가. 그가 바로 그 가능성이었다.

노부나가는 1560년, 강력한 이마가와가문의 대군을 오케하자마의 전장에서 격파하는것으로 그 자신의 신화를 연다.

오다 노부나가 VS 이마가와 요시모토

요시모토의 군세 3만에 대항한 노부나가의 병력은 고작 3천. 이와 같은 극한 열세에서 노부나가의 승리는 정보획득에 주력, 정보를 통해 기습을 실현하고, 전장에서는 무기의 혁신(노부나가는 자군 병사용 창의 길이를 대폭 늘렸다.)으로 보다 유리한 싸움을 벌임으로 가능했다. 전장에서의 지도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정확히 지켰고 그로 인해 결국 이긴 것이다.

이미가와가문을 멸한 직후 그는 차례로 이웃한 지역으로 세를 확대하였고 에치젠지역의 아사쿠라가문 등 무수한 유력 지배가문들이 노부나가에 의해 멸망 당한다. 교토로 입성하여 장군을 옹립하였고, 철포(조총)부대로 전일본 최강으로 불리우던 다케다가문의 기병대를 전멸시킨다.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은 확실시 되어갔다.

오다 노부나가 VS 다케다 신겐

다케다가문의 수만을 헤아리는 기병대가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합군을 향해 쇄도했다. 풍림화산 즉 바람처럼 숲처럼 불처럼 산처럼 그렇게 진격해 왔다. 노부나가의 철포대는 목책을 쌓고 3열로 선채 진격해 오는 다케다 기병대를 맞이한다.

3열중 제 1열 사격. 제 1열 뒤로. 제 2열 앞으로. 제 2열 사격. 제 2열 뒤로. 제 3열 앞으로. 제 3열 사격. 제 3열 뒤로. 다시 사격준비가 된 제 1열 앞으로. 제 1열 사격. 이와 같은 간단하나 확실한 효과를 내는 전술에, 전일본 최강의 다케다 기병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전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만한 총이라는 병기가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이 지닌 총에 대하여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직접접근식의 정공으로 승부하려 한 다케다가 지도부의 리더쉽 결여가 노부나가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열의 사격이라는 전쟁 기술도, 다케다가문이 기습 등 간접접근식 전술로 나왔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이 목전이던 1582년. 노부나가는 혼노지라는 절에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공격을 받게된다. 본능사의 변이라 불리우게 되는 이 사건으로, 노부나가는 격정적이고 난폭한 그 자신의 삶에, 참으로 어울릴만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화염 속에서 사라짐으로.

노부나가 사후,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군은 하시바 히데요시 즉 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진압되어진다. 그 뒤 노부나가 휘하의 중신인 히데요시와 시바타 가쓰이에 간의 주도권다툼이 벌어진다. 싸움에서 승리한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세력을 이어받게 되었으며 얼마 뒤 천하를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여전히 봉건식 제도는 그대로였고 히데요시에 항복한 영주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그대로 다스렸다. 그렇기 때문에 히데요시의 천하제패는 통합으로의 의미가 아니었고, 전 지역을 정치적으로 완전하게 통제한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선과 중국, 저 멀리 인도까지 정복하겠다던 노부나가의 허황된 꿈을 계승해서 일까. 또는 영주들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어쩌면 영주들의 관심을 내부의 정치 문제가 아닌 외부의 원정사업으로 돌리려는 목적에서 일수도 있다. 몽고에는 미치지 못하나, 무사국가로서 갑작스럽게 내부의 전란이 멈추자 그 파괴적인 힘을 소모해야 할 대상이 필요했고, 때문에 외부로의 팽창욕구를 느꼈다고도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히데요시는 조선출병을 결정,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결과는 실패였다.

히데요시의 사후 드디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패권을 잡고 장군가로서 에도막부의 시대를 연다. 1603년에 시작되는 에도막부는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막을 내리기까지 265년간 지속된다.

놀라운 사실은 지방 영주들의 독자적 세력이라는 봉건적구조는 에도막부가 몰락하는 날까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나라이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진정한 중앙집권을 이루지 못한 나라란 정말 흔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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