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세트 - 전10권 삼국지 (민음사)
나관중 지음, 이문열 엮음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삼국지를 펼치면 수 많은 인간군상과 마주치게 된다. 그 가운데 자신의 신의 혹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기 권리를 내어 놓거나 목숨을 바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청소년기의 나에게 있어, 유비나 조조, 제갈량이나 관우와 같은 주연보다 더 인상깊고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으며, 무엇보다 따라야할 모범이었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심은 흔치 않으며, 가장 위태롭고 절박한 순간에서야 드러나 빛을 발한다. 살고자 하면 살 길을 찾을 수도 있어도 그들은 그리 하지 않고 죽음으로 한 마음을 지킨다. 이들의 고집은 아름답고, 그 죽기까지 지켜낸 신념은 빼어난 능력보다 귀하다.

충신의 특징은 권력자를 향해 간언을 서슴치 않는다는 점이다. 간언을 한다는 것은 권력자의 선택이나 행위, 정책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의 그름을 밝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이다. 즉,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전풍, 저수, 황권, 동화, 유파, 왕루가 그러했다. 이들의 충언이 비록 그 주인, 원소와 같이 남의 입바른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두운 주인에게 냉대를 당하였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틀림없는 것이었다.

주인 혹은 신념을 위하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기꺼이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킨 무리도 있다. 그들은 갖은 위험, 심지어 죽음 앞에도 아랑곳 않고 당당했다. 관순, 경무, 전위, 진궁, 고순, 심배, 장임, 방덕 등이 그들로, 각기 나라의 대들보와 기둥과도 같은 이들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난세라는 특수상황을 들어 백성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이나 피해는 거리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반적 권력자들과는 달리, 고통받을 백성을 생각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내어 놓은 인물도 있다. 바로 촉주(蜀主) 유장이다.

삼국지 기자(記者)는 유장을 어리석고 유약하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침략해 오는 유비군 앞에 청야(淸野 곧 초토화)작전을 펴면 이길 수 있는 싸움임에도 백성의 고통을 생각해 성문을 열고 항복한 그의 결단을 보자. 동서고금을 합하여 가장 높은 자리에서 자기자신이 아닌 백성 즉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정점(頂點)에서 이웃을 구하기 위해 지위와 권리를 버리고 낮은데로 내려온 예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뿐만아니라 유장에게는 그를 위해 간언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절개를 지킨 숱한 충신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충신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유비의 침략을 자초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그런 주인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킨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유비가 투항을 권하는데도, 세력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제 주인 곁에 의롭게 남은 신하들이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실제 유장은 신하와 백성을 아끼고 온화한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인물이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장에 대한 평가가 왜 그토록 박하게 기록되어 있는가. 그가 결국 패자(敗者)였기 때문이다. 남을 죽이면서라도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마땅하고, 조금도 손해를 봐서는 안되며,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는, 철저히 이기적이어야만 하는 모진 현실 앞에 그는 분명 패배자였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를 중심에 둔다. 승자를 중심으로 쓰여지므로 패자에게는 가혹하기 마련이다. 승자의 입장에서, 승자가 패자를 몰아낸데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도 역사 기록의 관행이다. 이것이 유장에 대한 평이 가혹한 이유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유장이 리더쉽과 자질이 뛰어났다거나, 그의 통치 방식이 효율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변방을 위협하는 장로의 세력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은데에서는 소극적인 면이 보이고, 충신들의 사려깊은 조언을 듣지 않고 유비의 군대를 영내로 끌어들인 데에서는 미숙함이 발견된다. 어쩌면 통치 방식의 차이로 인해 유비와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유장의 다스림은 덕과 의(義)와 예(禮)의 다스림이었을 것이다. 이는 법(法)의 다스림, 즉 법치(法治)에 비해 준엄함과 기강과 효율이라는 면에서 분명 열세다. 그렇다면 유비가 유장에게서 촉을 넘겨받은 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이었는지 모른다. 유비의 다스림은 법가(法家)의 인물인 제갈량에 의해 법치에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자질이 조금 부족했을지라도 유장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름으로서 파멸로 치닫는 대신 순리(順理)를 따랐고, 아름답고 용기있는 결단으로 자기 자신과 그리고 수 많은 백성을 구했다.

유장의 뜻과 실천이 얼마나 놀랍고 또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양령대군의 생애가 참고가 될 것이다. 희생과 헌신은 결코 아무나 지닐 수 없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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