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은 법이 아니다
박원순 지음 / 프레스21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었다. 조금 머리가 커져서 부터 우리 민족의 미온적 과거청산에 분개해 왔던 나. 하지만 친일파 명단 발표 소식을 대하는 태도는 무덤덤하다. 반가운 일일 텐데도. 역지사지(易地思之), 일제강점기 한반도 지식인의 입장을 생각해 본 때문일까. 한번쯤 그 시대 지식인이 느꼈을 고충을 짐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일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리자 무서워졌다.

망국의 백성인 이들에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같은 극단적인 갈림길만이 놓여 있던 건 아니었을까. 일제를 따라 주류가 되거나 아니면 산속에 들어가 백이 숙제가 되든 혹은 빨치산이 되든 그도 아니면 망명을 하든 하는 비주류로의 극과 극의 선택. 이와 같은 선택의 딜레마에 일제강점기 한반도 지식인의 비운이 서려있다.

무너진 대한제국의 황제를 인격적으로 알며 그를 흠모한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나라로부터 깊은 은덕을 입은 사람이라면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특수한 애착의 고리로 묶인 사람은 드물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단순한 의리나 애국심만으로 전도유망한 장래를 모두 포기하고 비주류의 길을 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재능이란 분출하기는 쉬워도 가슴에 묻기는 어렵다.

오늘날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 비정부기구(NGO)에서 정열적으로 활동중인 박원순 변호사의 저서 ‘악법은 법이 아니다’에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처벌과 관련한 내용이 담겨있다. 프랑스사회가 부역자의 처벌에 단호했음은, 그렇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겐 분명 부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프랑스 국민이 택한 방법이 반드시 옳고 정당한 것이었는가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프랑스가 관용이 넘치는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런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로 이들은 격변의 순간 마다 희생양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몇 몇에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정말 프랑스의 정신과 자유가 수호 될 수 있는 걸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상처를 도려낸다며 그들은 양심에 또 하나의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페탱을 수반으로 하는 비시 정부(Vichy 政府)가 나치독일과 강화를 맺으려 했을 때 국민의 다수가 이를 찬성했으면서도, 전쟁이 끝난 뒤로는 모든 책임을 페탱과 라발 그리고 몇몇 예술인과 그 밖의 희생양 들에 전가했다. 만 명 이상이 처형되었다. 역사적 심판, 단죄라는 이름 하에 재판도 없이 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과거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으며 덮어놓고 잊고 용서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 단죄는 분명히 하되, 처벌의 기준과 방법, 부역 정도에 따른 부역자 등급을 구별 정립한 뒤어야 할 것이다. 마녀사냥과도 같은 프랑스식의 해결은 피해야 한다. 더욱이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두 똑같은 죄인으로 획일화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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