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일은 무엇인가
제임스 해밀턴 지음, 이대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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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욜로'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You Live Only Once의 첫 글자만 따서 만든 신조어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즐기라는 말이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물론 계획 없이 소비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행태를 꼬집는 뜻도 있겠으나, 이 말은 마치 '왜 일을 해? 왜 수고롭게 살아? 너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해'라며 '일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비웃는 베짱이의 대사와도 같은 말이다. '일'을 열심히, 성실히 하는 것이 구시대적이고 바보 같은 행위로 느껴지게 만드는 말인 것 같다.

그리스도인에게 조차 고되고, 피하고 싶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일이라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과 수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에서 일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단순히 일을 통해 번 돈으로 먹고 사는 욕구를 충족하면 그만일까? 일을 통해 자아실현하고 야망을 이루면 그만일까? 성경적으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이 책에서는 창조 때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하신 일의 의미, 그리고 타락으로 인해 고된 노동이 되어 버린 일, 구속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하신 일의 의미, 그리고 회복을 통해 마침내 온전히 기쁨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 총 네 파트로 일의 의미를 바라본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올바른 '일'에 대한 가치관을 알려주는 책이다.

 

노방 전도를 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4영리'의 논리와 닮아있다. 인간에게 적용되는 구원과 회복의 약속이 바로 우리가 하는 '일'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시편 128편은 일하는 자에게 헌정된 노래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란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한 결과, 즉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 일의 결과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의 기자는 분명히 일을 즐거워하고 있고 하나님이 복 주신 자는 우리의 손이 한 수고를 통해 먹게 되고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말한다. 성경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은 하나님이 이 천지 만물을 디자인하시고 기획하시고 생산해 내시는 장면이다. 창의성과 기획력, 계획과 효율성이 필요한 업무를 통해 성과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 잘하는 김차장님, 이 부장님, 박 상무님과 업무 영역이 다르지 않으신, 하지만 너무도 완벽하고 아름답게 천지만물 창조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루시고 흡족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고하고 소통하는 고된 일을 통해 성취를 이루는, 그런 종류의 지식 노동(knowledge work)을 일로 인정한다. (하나님이 천지창조에서 발휘하신 창의력은 지식 노동이라는 점) 하나님은 그분 스스로 숙련된 일꾼으로서 비할 데 없는 탁월함과 창조성으로 자신의 과업을 이루신다. 일은 고상한 것이다. 하나님을 닮은 활동이다. 일은 형벌이 아니다. 저지를 받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고된 작업이 아니다 / 21쪽

 

성경 내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주요한 개념은 하나님은 계속 일하시며 인도하시고 지지하시며 사랑하시며 심판하시며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적이고 능력이 있으며 효율적이고 섬세한 일꾼이시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일은 다른 이를 부양하고, 복을 주고, 필요를 공급하고, 생명을 준다. / 22쪽

 

하나님도 반드시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분은 처음부터 일을 하시고,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이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당신의 업무를 위임하신다. 이 천지창조의 모습 속에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하나님 당신의 일을 위임하시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본래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을 때의 의도를 꺠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실 때 우주적 성전을 지으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성전에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두셨다.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복을 주시고 책임을 맡기셨다. 그들이 맡은 일은 하나님이 좋게 만드신 세상을 모든 동물과 식물에게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의 성품과 창조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세상을 경작해야 했다, 즉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과 권위와 통치를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기 위해 창조되고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과업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에게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일은 처음부터 창조 질서 안에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과 땅 위의 모든 생명을 관리하는 청지기직을 주셨다. 모든 직업은 이 위대한 과업과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지적으로 영적으로 번성하도록 돕는 것은 사람이 땅과 피조물을 잘 다스리도록 돕는 일이다. / 26쪽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의로운 업무는 땅을 정복하고 만물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일과의 관계에서 파악된다.

이런 일은 이 일을 하는 모든 이에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기회를 준다. / 27

 

한 사람이 자기 일을 하는 방식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 자신만의 목적의식은 그가 자기 일을 하는 방식에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을 에덴동산과 같이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목적에 맞도록 회복시키는 행위, 하나님이 지으신 땅과 땅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으로 인해 우리 인간이 하는 일에도 저주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주권을 행사하라는 임무를 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일하도록 창조하셨으나, 사람이 죄를 짓고, 그 결과 하나님은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심판의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의 여자의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이는 정의가 만족되고 저주가 사라지면 일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족을 받아 죄로 인한 방해와 제약에서 벗어날 날을 예고한다. / 55쪽

 

우리가 타락함으로 인해 우리가 하는 일도 타락한 것이다. 죄로 인해 일이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어졌다. 그리고 모든 일이 무익하고, 무의미하고 공허해졌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기 원하시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의 결실을 어떻게 다루기를 원하시는 지를 알 수 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도서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이야기한다. 지혜도 헛되고, 해 아래 행하는 모든 일이 헛되다고 말한다.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수고한 결과를 다른 이들이 누린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자는 전도서에서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자기 일을 즐기는 것보다 선한(더 좋은) 일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도 말한다.

 

즉, 사람이 죄를 짓기 전 심히 좋던 곳에서 하나님은 선한 음식, 일, 배우자와 누리는 교제를 주셨으나 죄가 세상에 사망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음식과 일과 교제라는 선한 선물을 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죄로 인해 심판인 사망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즐기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한 이 세상에서 요셉, 다니엘, 느헤미야, 룻처럼 살고 일해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보기 위해 노력하며 일해야 한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그 분을 의지해야 한다.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성경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 성경 말씀에 따라 일을 해야할 것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4:11-12 말씀의 '조용히 하라(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마라), 자기 일을 하라(불필요하게 다른 이의 일에 참견하지 마라),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나태하지 마라), 외인에 대해 단정히 행하라(기독교가 좋은 평판을 얻도록 행하라)'는 현대인인 우리에게도 분명히 적용되는 말씀이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회복을 약속하신다. 예수님이 오셔서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이고 죄를 없애시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창조 못적에 맞게 우리를 회복하시고 우리가 하기로 계획하셨던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 일은 무엇인가. 일이라고 하면 고되고 힘든 것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은 원래부터 이 일이라는 것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본래의 일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그 일을 하는 기쁨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일을 할 때 구원과 회복을 약속하신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지적인 느헤미아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주변을 연구하며 이루려는 일(성벽 재건)에 필요한 지혜를 얻는 태도를 벤치마킹해야겠다. 느헤미야는 단순히 공부만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며 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일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헌신하며 끊임없이 성실하게 일한다. 일하면서 공의와 정의에도 헌신한다. 그리고 계획을 완수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당장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심판에서 평가받고, 그 때 상급이나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느헤미야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닫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때로는 누군가가 나의 노력과 성과를 가로채는 일이 있더라도 분해하며 세상의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알고 계시며 언젠가 주님의 때에 평가와 심판이 있을 것을 기억하며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기로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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