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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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이 책의 제목인 '살라미스 해전'의 부제로 쓰여진 말이다. 기원전 480년부터 이듬해까지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와 이에 맞선 그리스 도시국가 동맹 사이의 전쟁 중 일어난 이 해전에 대해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는 전투라고 인정하고 있다. 아니 그걸 넘어서 그리스 문명을 부모로 둔 서구 문명이 이 전투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살라미스 해전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무릇 역사상 중요한 사건의 현장 속에 있던 당사자들이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살라미스 해전과 함께 세계 4대해전에 포함되는 레판토 해전(1571)과 칼레 해전(1588)의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레판토 해전의 결과 오스만 투르크는 서부 지중해를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승리한 유럽측 국가들이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에 따라 투르크는 신속하게 함대를 재건했고, 다음 세기까지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투르크는 이 해전 이후 이전까지 활발했던 정복활동이 점차 주춤하기 시작했고, 정체의 시기를 거쳐 서서히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패배한 칼레 해전이 끝난 뒤에도 승리한 영국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도 역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승리 후에 별다른 전략적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여왕은 모든 것을 반만 했고, 자잘한 침략을 거듭함으로써 에스파냐인들이 자신들의 약점과 방어법을 깨닫게 해주었다. (Raleigh)

에스파냐는 이 해전에서 130척의 전함 가운데 53척만이 심하게 부서진 가운데 귀환했지만 얼마 안돼 또다시 대규모 함대를 구축했다. 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인들은 여전히 에스파냐가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를 배우는 우리들은 이 해전이 에스파냐의 전성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을 알고 있다. 살라미스 해전 당시의 그리스인들도 이 해전에 우리들만큼이나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페르시아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중해에서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고, 도리어 그리스인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같은 내전으로 스스로 힘을 낭비했다.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기원전 394년 파르나바조스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함대는 크니도스 해역에서 스파르타 함대를 격파하여 에게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였고, 이듬해에는 라코니아 해안을 약탈하였으며, 펠로폰네소스 근처의 키테라 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여 제해권을 공고히 한다. 그리고 기원전 387년 페르시아는 내전중이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압력을 가하여 평화조약을 맺게 했다. '안탈키다스의 평화'라 불리는 이 조약은 '왕의 평화'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도 페르시아는 여전히 강력했던 것이다. 살라미스 해전이 끝난 뒤 1세기가 지났는데도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크세르크세스의 침공을 물리친 뒤 살라미스 섬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아이스킬로스나 헤로도토스와 같은 그리스 작가들이 승리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했지만 이 전투가 서구 문명은 물론이고 향후 그리스의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스인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라미스 해전은 그 자체로도 또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담긴 해전이다. 비록 같은 그리스 혈통인 이오니아인들과 마케도니아와 테베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 국가들이 페르시아 편에 서기는 했지만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그리스인들은 그들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결된 힘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그들끼리 숱한 전쟁을 치뤘고, 이후에도 치열하게 다투어 결코 하나가 되지 못했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그리스인들은 힘을 합하여 자유를 지켜낸 것이다. 반면 페르시아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에 비해 우위에 있었지만 페르시아 군에 속해 있던 여러 민족들은 서로 반목을 일삼느라 전력을 다할 수 없었다. 해전 중에 크세르크세스 앞에서 이오니아인들을 비난했던 페니키아인들, 위기가 닥치자 같은편인 칼린다의 배를 침몰시킨 할리카르나소스의 아르테미시아 등 페르시아 해군의 주축인 이들은 전투의 승리보다는 철저히 자기 이익에만 충실했던 것이다. 즉,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했던 그리스인들의 분전이 예상을 뒤집은 기적같은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살라미스 해전은 이후 그리스의 문명의 번영에 큰 역할을 했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로도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미칼레와 플라타이아에서 전투를 벌였고,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파우사니아스가 지휘하는 그리스 육군이 마르도니우스의 페르시아 육군을 격파한 후에야 전쟁의 막은 내렸지만 살라미스 해전 이후 크세르크세스가 퇴각을 결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페르시아는 두번 다시 그리스를 정복하려는 시도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살라미스에서 그리스가 패했다면 뒤이은 페르시아 육해군의 합동공격에 펠로폰네소스는 무너졌을 것이고, 아마 그리스 문명도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전쟁 이후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문명은 활짝 꽃을 피웠고,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서 그리스 문명은 세계로 뻗어나가 유럽 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그리스 문명이 생존한 것... 이것이 바로 이 해전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마치 소설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 곳곳에 지형, 날씨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저자가 직접 삼단노선의 모형인 올림피아스호를 타고 살라미스 해협을 항해하면서 체험한 경험이 녹아든 것이다. 게다가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는 페르시아군의 위용, 불길에 휩싸인 아크로폴리스, 치열하게 토론하는 그리스 지휘관들의 표정, 지칠대로 지친 노잡이들의 모습, 충각에 부딪쳐 좌우로 흔들리는 전함, 화살이 날아다니고 창칼이 부딪치는 광경 등에 대한 묘사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다양한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것 같다. 살라미스 해전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아울러 1차 사료인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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