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로마 살림지식총서 116
김덕수 지음 / 살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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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거의 2500년 전 멀고 먼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그리스와 로마문명은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의 이 질문에 대해 얼핏 생각해보면 고대의 그리스,로마와 현대를 사는 우리 사이에 접점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24시 찜질방, 사우나와 같은 목욕탕 문화에서부터 현대 정치의 기본 구조인 민주정과 공화정에 이르기까지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즉,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제한적이고, 그 둘 사이의 구분도 명확하게 되지 않을 정도로 현대의 우리들에게 그리스와 로마는 그저 먼 옛날의 문명으로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와 로마문명은 서구 문명의 두 기둥이다. 고대에 지중해를 배경으로 발전을 거듭한 두 문명은 상업적, 군사적 수단을 통해 그들의 문화,제도 등을 전파했고 헬레니즘 시대와 제정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절정에 달했다. 특히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인 아테네와 작은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발전한 로마는 두 문명의 성격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들을 비교함으로써 서양 고대 문명의 이해는 물론 현대의 우리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구 문화의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본 이야기에 앞서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라는 말의 기원과 헬라스의 의미 그리고 '영원한 로마(Roma Aeterna)'라는 이데올로기의 발생과 그것이 유럽역사에 미친 영향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제 다루게 될 아테네와 로마의 비교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로 정치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카피톨리움 언덕과 유피테르 신전과 같은 물질적인 유산으로부터 시작해서 귀족정치, 광장 문화, 민회처럼 문화적, 제도적인 유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아테네와 로마를 비교하고 있다. 이 두도시의 공통점으로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 왕정, 귀족정, 민주정 혹은 공화정이라는 정체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정치, 상업, 종교 등 공적, 사적 생활의 중심이 된 광장(아고라와 포룸 로마눔)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왕정, 귀족정을 거쳐 거의 완전한 민주정으로 이행한 그리스와 달리 로마에서는 집정과과 원로원, 민회라는 3개의 정체적 요소가 혼합적으로 기능을 발휘했다는 점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 두도시의 비교를 통해 현대사회를 이루는 주요 요소인 민주주의, 공화정, 의회, 선거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무엇이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고, 무엇이 로마 문화의 영향인지 보다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라는 라이벌 관계를 좀더 확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아테네와 로마라는 고대 세계의 범위에서 벗어나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대립을 통해 중세 이래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두 문화권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교회의 분열은 정치적, 종교적 요인이 주된 원인이지만 그리스와 로마라는 배경도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이 두 문명을 라이벌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사실 그리스와 로마는 그들 문명의 전성기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사사건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리스 문명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로마는 아직 발전 중에 있었으며,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할 때쯤 그리스는 이미 쇠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또 '정복한 그리스에게 정복당했다'라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로마가 정복한 그리스의 문화가 오히려 로마를 문화적으로 지배한 일도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두 문명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의 라이벌 관계란 어쩌면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고대에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해도 먼 훗날에 서구 문명의 근간이 된 두 문명이 비교되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우리에게 멀리 떨어진 과거의 것이지만 오늘날 서구 문명의 기원이 된 문명으로써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몰랐던 많은 것들 - 민주주의, 의회, 목욕탕 등 - 이 사실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 두 문명의 비교를 통해 서구 문명의 기원에 대해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즉,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우리 가까이에서 현재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리스와 로마를 알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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