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성동맹(Holy League)***

교황 피우스 5세
지중해를 위협하는 오스만 함대에 맞서 에스파냐, 베네치아, 제노바, 말타 기사단들이 힘을 합쳐 연합함대를 구성해 투르크에 대항하는 신성동맹을 만들것을 제의(교황은 신성동맹 결성당시 자신의 개인재산을 사용해 12척의 갤리선을 지원합니다.)

펠리페 2세
신성동맹 결성 당시 100척의 갤리선과 3만명의 병사들을 지원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
본명 - 후안 바우티스타 바스케스(Juan Bautista vazquez)
전 에스파냐 국왕인 카를로스 5세의 서자이자 당시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으로 신성동맹 함대의 제독. 레판토 해전에서는 함대의 중앙(63척의 갤리선)을 지휘했습니다.

카를로스 5세

세바스티안 베니에로
당시 크레타 총독이며 나중에 베네치아의 총독을 역임하는 인물로 이 당시 이미 70이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전투 당시에는 돈 후안과 함께 중앙 함대를 지휘합니다.

마르코 안토니오 콜론나
교황함대의 사령관, 돈 후안과 함께 신성동맹의 중앙을 지휘했으나 전투 중 사망합니다.

돈 알바로 데 바산
산타 크루즈의 후작,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예비대인 35척의 갤리선을 지휘. 해적출신 함장인 울루치 알리가 안드레아 도리아가 지휘하는 우익함대와 중앙과의 간격이 크게 벌어진 틈을 노려 투르크 함대와의 전투에 지친 중앙의 후면을 집중 공격하자 자신의 갤리선들을 이끌고 이를 구원해냄.
돈 후안 데 카르도나
후방에서 돈 알바로 데 바산과 함께 예비함대인 8척의 갤리선을 지휘함.


잔 안드레아 도리아
제노바의 용병대장. 신성동맹의 우익(제노바와 교황령의 배들로 구성된 64척의 갤리선)을 지휘했으나 신성동맹의 중앙함대에서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떨어져있던 탓에 그 틈을 노린 울루치 알리의 역습을 허용하게 됨. 이로 인해 전투가 끝난 후 자신의 함대를 보호하기 위해 정면대결을 피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동맹군들의 의혹과 빈축을 사게됨.

아고스티노 바르바리고
1486년에서 1501년끼지 베네치아의 총독을 역임했던 인물, 신성동맹 함대의 좌익(63척의 갤리선)을 지휘, 모하메드 시로코가 지휘하는 오스만 함대의 좌익에게 처음에는 고전하나 곧이어 벌어지는 함상백병전에서 전세를 만회, 적함대를 전멸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전투 당시 눈에 입은 치명상으로 며칠 후에 사망합니다.

안토니오 브라가디노, 암브로조 브라가디노
베네치아 공화국 소유의 갈레아스선 6척을 지휘, 레판토 해전당시 선두에 나섰던 갈레아스선들의 활약으로 오스만 함대의 3/1이 흩어지거나 박살났다고 합니다.
사진)베네치아 갈레아스(La Galeazza veneta)
1571년의 레판토 해전에서 신성동맹 함대의 선봉을 담당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갈레아스 선입니다.
갈레아스는 기존의 갤리선을 더욱 대형화시키고 함포의 탑재량을 대폭으로 늘린 선박입니다. 이 배의 선폭은 갤리선보다 넓었다고합니다. 그리고 동체가 깊어서 배 앞쪽에는 오늘날의 선회 포탑에 해당하는 구조물을 세울 수 있었고, 이 때문에 "해상 포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전투현장까지 작은배들에 견인되서 항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갈레아스선에는 갤리선에 장착되는 통상적인 장식적 이물 대신, 강력한 충각이 새 부리처럼 달려 있었고 이물의 높이를 낮춰서 적 함대의 소형 선박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는군요. 50문 가량의 중포를 장착했으며 좌우현과 고물 역시 중무장했고 노잡이들은 안전하게 갑판 밑으로 들어가 있었으며 갑판 위에서는 전투원들이 작전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갈레아스에는 20개 가량의 노가 있었고 노 하나를 7명의 노잡이들이 저었다고 합니다.전투시 노잡이들은 양 방향으로 배치되어, 약 17m 길이의 노를 밀고 당기면서 저었습니다.




***오스만 함대***


술탄 셀림 2세



무에친자드 알리 파샤
투르크 함대의 제독, 알제리의 베이이자 지중해를 휩쓸고 다니던 무슬림 해적의 우두머리. 레판토 해전당시 오스만 함대의 중앙(96척의 갤리선을 지휘함). 전투 당시 열심히 분전했으나 결국 화승총 탄환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그의 머리는 장창에 꿰어져 적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은 돛대에 매달렸다고 함.

울루치 알리
투르크 함대의 좌익(93척의 갤리선)을 지휘, 기독교 함대의 우익과 중앙이 벌어진 틈을 타 치열한 전투에 지친 중앙함대의 후위를 기습하여 위기에 빠트렸으나 후방에서 대기하던 예비함대 40여척의 반격을 받고 퇴각합니다. 당시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던 오스만 제독들 중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로 이듬해인 1574년 함대를 재건해 튀니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모하메드 시로코
오스만 함대의 우익(56척의 갤리선)을 지휘, 당시 아고스티노 바르바리고가 지휘하던 신성동맹의 좌익을 그리스 본토인 아이톨리아까지 밀어붙이는 등 선전하지만 얼마 후 벌어진 함상백병전에서 단병접전에 능한 에스파냐 병사들과 화승총의 연발사격을 받고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고 결국 시로코도 목이 잘려 돛대에 걸리는 신세가 되고맙니다.
출처 - 역사 속의 전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