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시스
크세노폰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기원전 401년 9월 바빌론에서 북쪽으로 약 100마일 정도 떨어진 쿠낙사 평원...

자신들 앞을 가로막던 페르시아군을 멀리 쫓아내고 돌아온 그리스 용병들 앞에는 처참하게 파괴된 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그들이 따르던 페르시아 왕자 키로스가 전투 중에 전사했으며, 살아 남은 병사들은 죄다 페르시아 왕에게 항복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주위에는 온통 페르시아군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지리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그리스 용병들은 적국 한가운데에 고립된 것이다!!

이들이 그리스를 떠나 머나먼 페르시아 내륙으로 진군하게 된 것은 페르시아의 왕위계승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기원전 402/1년 페르시아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아우 키로스는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카리아의 태수 티사페르네스의 모함으로 체포됐다가 간신히 풀려난 뒤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품게 된다. 그래서 그는 휘하의 페르시아인 이외에 그리스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소아시아를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진격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아나바시스>는 '올라가기'라는 뜻인데, 이는 저지대인 소아시아 해안에서 고지대인 메소포타미아로 그리스인들이 지나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비록 전투에서 우익을 맡았던 그리스 용병들이 자신들과 맞서던 페르시아 군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중앙에서 지휘하던 키로스가 전사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군 지휘관들이 협상차 티사페르네스를 찾아갔다가 모두 처형되자 병사들은 더욱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리스 용병들은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고, 여기서 이 책의 저자인 크세노폰이 새로운 지휘관이 된다. 아나바시스는 바로 그리스 용병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 있진 않지만 사실 아나바시스는 서구에선 지휘관, 더 나아가 지도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고전이다. 그 이유는 책 곳곳에 드러나 있는 연설 때문이다. 병사들의 합의로 지휘관으로 선출된 만큼 크세노폰은 자기 맘대로 부하들을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명령'보다는 '설득'으로 병사들을 이끌어야 했고, 그 때문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크세노폰은 논리정연한 연설을 통해 그들을 설득해 나갔다(크세노폰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한 병사가 그를 고소한 일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관계가 엄격한 상하관계가 아니었던 듯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용병들 간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사실 설득을 통해 부하들을 이끄는 것도 지휘관의 능력이다. 30년 전쟁 초기에 맹활약했던 스웨덴의 왕이자 위대한 장군이었던 구스타프 아돌프 2세가 이 책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도, 저명한 군사학자인 리델 하트가 아나바시스를 "모든 군사저술 가운데 최고의 책"이라 극찬한 것도 이런 점에 주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용병들이 페르시아의 중재 제의를 거부하고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돌아가는 길은 정말 험난했다. 사실 페르시아 군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이 별로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인들은 정면으로 그들을 상대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리스인들에게 적대적이었던 부족들이었다. 광활한 페르시아 제국 내에는 수많은 부족들이 있었고, 페르시아 정부도 그들을 일일이 통제하지 못했다. 여러 부족들과의 전투로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마침내 그리스 용병들은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시인 트라페주스에 도착했다. 아나바시스에는 그동안 그리스인들이 만났던 부족들의 풍습이 기록되어 있어 페르시아 내 이민족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리스 용병들은 같은 그리스인들의 도시에서도 냉대를 받는 등 위험에서 상당히 벗어난 뒤에도 고난은 계속됐다. 오늘날의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에서 그들은 시내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았고, 트라키아의 왕자 세우테스에게 고용되어 싸웠지만 급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끈질기게 협상을 벌인 적도 있었다. 기원전 399년 3월 그리스 용병들은 페르시아의 태수 티사페르네스와 파르나바조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한 스파르타 장군 티브론의 휘하에 들어감으로써 그들의 고단한 여정은 마침내 끝이 난다.

사실 아나바시스는 딱히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책이다. 서기 1세기의 웅변가 겸 철학자인 크뤼소스토모스는 웅변가가 되려는 사람은 <아나바시스>를 읽을 것을 권하면서 그 이유로 이 책에는 정치가가 행하게 될 온갖 종류의 연설이 들어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명료한 문체와 세련된 아티카 방언 때문에 문학적 가치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크세노폰은 이 책을 회고록 혹은 자서전으로 쓴 듯하지만 내용을 보면 여행기, 지리서, 역사서의 성격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사람들은 기원전 5세기 말의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과 군사제도 그리고 크세노폰의 생애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이보다도 훨씬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끝도 없이 펼쳐진 대제국 페르시아 한복판으로부터 한줌도 안되는 그리스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페르시아가 허약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티사페르네스가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계 폴리스에 즉각 페르시아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긴 했지만, 이미 상대의 허약함이 드러난 이상 그리스인들은 이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 기원전 399년 봄 용병들을 받아들여 세를 불린 티브론의 군대 지휘권을 가을에 스파르타에서 온 데르퀼리다스가 인수했고, 기원전 396년에는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 2세가 군대를 장악하여 페르시아 태수의 통치령 곳곳을 습격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페르시아는 크니도스 해전에서 스파르타를 격파하여 에게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이후 '안탈키다스의 평화' 로 불리는 강화조약이 체결되어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페르시아의 힘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이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나바시스>에 기술된 사건들이 있은 지 20년 뒤 아테네의 웅변가 이소크라테스는 전 그리스가 연합하여 페르시아를 정벌할 것을 주장하였고, 결국 이 염원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실현된다. 물론 아나바시스에는 이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범그리스주의'가 확실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크세노폰의 이 책은 그의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결국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을 이끌어냈다. 서기 2세기 로마의 역사가 아르리아누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기술한 책에 <아나바시스>란 제목을 부친 것도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가  후세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것이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책의 장르가 확실치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나오는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웅변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위기적 상황에서는 정확한 상황 판단과 함께 이를 납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그런 때가 아니더라도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나 대표는 독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고 이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상적인 정치가 혹은 경영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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