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주론
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 지음, 이동진 옮김 / 해누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저자로 근대 정치학의 시조. 역사가, 희극작가, 비극작가.

오늘날 알려진 그의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만 위와 같다. 살아 생전에도 그의 명성은 이탈리아를 뒤덮었었고, 죽어서는 더욱더 유명해진 사나이였다. 현대에도 그의 사상의 유용성을 두고 찬반양론이 분분한 것을 보면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마키아벨리의 절친한 친구였었고, 그 못지 않은 날카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프란체스코 귀치아르디니는 예나 지금이나 마키아벨리에 비해 덜 알려진 사람이다.

이 책의 전 내용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지만 일부 내용은 이미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들에서 '각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따라서 이책의 제목이 '신군주론'으로 나온 것은 역자가 이미 유명해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귀치아르디니가 여전히 마키아벨리의 그늘에 가려진 것 같아 약간 안쓰럽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귀치아르디니 또한 비범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릇 정치와 권력, 사회에 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공상이 아닌 현실을 그대로 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다. 거기에 바탕을 둔 사상만이 실제로도 유용할 뿐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지속될 수 있는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인간과 사회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귀치아르디니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많은 진리들을 전해 준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 군주의 입장을 염두에 둔 책이라면 이 책은 군주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내용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책에 '결정을 내리는 데 오랫동안 신중히 고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단 결정을 내린 뒤에도 그 결정을 실천에 옮기는 데 시간을 끄는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라는 귀절이 있다.

주위를 보면 충동구매를 하는 사람처럼 신중함이 결여되어 있거나 자기가 하겠다고 결심한 일을 계속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위의 구절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언제 신중해야 하고 언제 과감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유용한 내용이다. 그밖에도 귀치아르디니는 정치, 군사, 종교 등 다양한 면에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너무나 닮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실주의적인 정치 감각,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 등이 그렇다. 그런데 왜 귀치아르디니는 마키아벨리의 그늘에 가려지게 되었을까? 나는 그 이유가 두 사람이 추구한 근본적인 목표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일생 전반에 걸쳐 추구한 최고의 목표는 이탈리아의 통일이었다.

하지만 귀치아르디니의 일생의 목표는 질서가 유지되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사는 것, 이탈리아가 외국인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도 친구의 이 생각은 옳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그 목표는 마키아벨리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소극적으로 보인다. 오랜 분열에 시달리던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예 '이탈리아'라는 말 자체가 낯설었다고 한다. 귀치아르디니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통일된 강력한 이탈리아를 꿈꾸었다.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훨씬 대담하고 과단성 있는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정치 사상가로 여겨지고, 귀치아르디니는 역사가로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귀치아르디니만의 관점도 있다. 평생 권력과는 인연이 없었던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고위 관직을 두루 거쳤던 귀치아르디니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군주와 신하간의 관계, 권력자의 심리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키아벨리와 함께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인 귀치아르디니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르네상스의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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