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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ure - 지우지 않은 사람들
백인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만약에 지난 2년 동안의 기억을 지우게 되면 나는 엄마가 천국으로 이사를 한 것도 기억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일까. 현재 부재 중인 엄마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다 지운다면 내 방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가족 사진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은 다 알겠는데 엄마는 누구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걸까. 소설이라는 것이 꼭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원래 그런 조건 때문이 이 책이 궁금했던 거였지만.
가제본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표지다. 사진이고 그림이고를 떠나서 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색도 없다. 마구 하얗지도 않고 그렇다고 누렇지도 않은 미색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기억을 지운다면 이런 색의 공간이 뇌 속에 생겨버리는 걸까. 이야기 속에서는 스물 다섯 살이 되면 자신의 기억을 지울 것인지 보존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법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섬짓하다. 거기다 영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칩을 심는다니. 그걸로 기억을 조종할 수 있다는 그런 조건을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들이 마구 허무한 것만은 아니기에 혹시라는 생각을 품게 되기도 한다.
이야기는 2045년 기억의 삭제와 정제가 제도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억을 관리하는 Re:MEM의 창립멤버인 소연이 그 중심에 있다. 그녀는 기억 재활 간호사인 딸과 정신과 의사인 남편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선배이자 대표인 준혁과 지금은 국가기억윤리위원장인 유헌이 있다. 소연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괸리하는 내용이 전부일까 생각했는데 개인적인 그런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기억을 사고파는 문제등 윤리적인 접근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며 더불어 생각지 못했던 사랑 이야기까지 그 밑바탕에 슬며시 깔아 두었다. 재미적인 요소를 생각했음일까.
일단 기억이라는 소재가 막 새롭거나 신선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바로 얼마전에도 그런 소재로 이야기를 쓴 책을 읽었고 그 책은 이미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어떻게 접근하는가가 이 진부한 소재를 잘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일텐데 과학적인 접근에 픽션을 더해서 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생각이다. 오래되었다면 안 쓸 법도 한데 이런 소재들을 가진 이야기들이 아직도 계속 나온다는 것은 이 기억이라는 것에 대한 것이 아직도 풀어야 할 것이 많은 영역이고 그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는 소리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정기적으로 기억을 지워야 하는 기억 삭제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힘들더라도 나에게 생긴 일이니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모든 기억을 가진 기억 보존자로 남을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